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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아들이 한 일

빨래 좋아하세요? 이불 빨래는 어떠세요? 저는 빨래,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이불 빨래라면. 생각만으로도 지치고, 기운이 빠집니다. 무겁고, 힘이 들기 때문이죠.

지난 밤, 잠결에 손을 뻗었더니 축축한 게 손에 닿았어요. 이불 한 귀퉁이가 흥건히 젖었더군요. 찝찝함에 얼른 손을 치웠지요. 뭐지? 순간, 청소기가 공기를 후욱 빨아들이듯, 잠이 후욱 멀리 날아갔어요. 한밤중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직감으로 그게 침인지 알겠더군요. 그 축축함 정도가 흘린 지 얼마 안 된 듯했어요. 아- 짜증.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죠. 일거리가 생긴 겁니다. 빨래, 그것도 이불 빨래. 대형 사고죠.

이 침은 아들 녀석의 짓이에요. 자기 자리를 놔두고 몰래 내 옆에 누운 아들이 한 짓이라고요. 아침마다 입가가 허연 것이 그 증거고, 눈을 뜨면 물을 한 컵씩 들이 마시는 게 그 이유예요.

그냥 빨래하지 말고 말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콘도에 사는 저희는 집안에 세탁기가 없어요. 3층에 사는 저희가 지하 세탁룸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는 것이 꽤 귀찮은 일이거든요. 비록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지만, 세탁룸 정반대 쪽에 사는 저희에겐 여전히 힘이 들더라고요. 사실 지난 주 빨래도 엊그제 끝내서 빨래통에 빨래도 없고, 특히 이불은 부피도 커서 들고 다니기 무겁기도 한데 말이에요.



그래서, 눈 딱 감고 버텨볼까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냄새는 어쩌냐고요.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 방안 가득한 시큼한 침내는 어쩌지요? 몸이 피곤하면 냄새를 견딜 수 있을까요? 특히 버스 정류장 흡연장을 연상케 하는, 이 비위 거슬리는 침내를 참을 수 있을까요? 담배 피는 사람들이 침, 가래를 뱉고 신발로 슬쩍 짓이긴 곳, 그곳에서 나는 쩔은 냄새, 빗물에도 씻겨가지 않는, 견디기 역한 침내. 이 냄새가 우리 아들의 침내예요.

사실, 예전엔 머리에서 발끝까지 향기로운 아이였어요. 학교 문 앞에서 "빠이" 할 때, 머리에 입을 맞출 때면, 정수리에서 꽃향기가 났더랬어요. 입 냄새도 없었어요. 오히려, 항상 달콤했죠. 주말 아침, 늦잠을 자는 제게 살금살금 와서 제 귀에, "엄마 일어나세요" 할 땐, 딸기향이 났어요. 달달했죠. 그런데, 덩치가 커가면서, 점점 씻기를 싫어했어요. 씻어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요. 샴푸니 바디 워시니 향 진한 걸로 써도 여전히 샤워 후 반나절을 못 넘기고 냄새를 풍깁니다. 이젠, 아들 정수리에선 꽃향기 대신, 썩은 우유 냄새가 납니다. 양치질도 자주 생략합니다. 바쁜 아침, 아침 식사라도 거르는 날이면 틱택 몇 알 입에 털어놓고 갑니다. 그러니, 그 입에서 흐른 침내는 그야말로 사악하지요. 이젠 딸기 썩은 내가 납니다.

오늘도 일거리가 생겼네요. 언제쯤이면 일 없이 여유가 생길까요. 불필요한 일에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날이 올까요. 무슨 전쟁을 치른 듯, 지쳐 잠든 아들 귀 언저리에, 저는 가만 가만 속삭였어요.

"아들아, 내 아들아, 제발 엎드려 자지 마라. 침 흘린 너도 목이 타지만, 이불 빨래 해야 할 이 엄마의 속도 탄다. 이불 빨래 힘들어, 너 자꾸 내 잠자리에 와서 침 흘리고 자면, 너 이불 빨래 시킨다!"


강인숙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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