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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얼마 전 남한산성에 다녀오는 길에 성남 모란시장으로 구경 갔더니 마침 오일장이 서 있었다. 장마다 돌아다니면서 망치, 펜치, 톱, 호미, 삽 같은 쇠붙이 연장을 파는 장수가 전을 벌이고 있었다. 3인 1조가 되어서 곱사춤, 병신춤, 곰배팔이춤에 만담을 곁들여 손님을 끌어모아놓고 물건을 팔았다.

관객은 열댓 명 정도였다. 나는 돼지껍데기볶음을 한 접시 사다 먹으면서 맨 앞줄에 앉아 구경했다. 행수(行首)쯤 되어 보이는 더벅머리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했다.(…)

-아, 니미, 서울공대를 톱으로 나온 녀석들이 못대가리 하나를 못 박고, 닭모가지를 못 비틀어. 아, 제미, 로스쿨 톱으로 나온 놈들이 펜치를 못 쥐고 도라이버를 못 돌려. 이게 사람이냐, 오랑우탄이냐. 몸이 다 썩은 놈들이 어떻게 밤일을 해서 새끼를 낳는지.

나는 박수쳤다. 다들 박수쳤다. 나는 그 연설에 감동해서 당장 삽 한 자루를 샀는데, 올겨울에 그 삽으로 눈을 치웠다.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중에서.



소설가 김훈은 우리 시대의 '글쟁이'다. 김훈 글의 힘은 현장에 있다. 그의 집필실 칠판엔 '必日新(필일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세 글자가 써져 있다고 한다. 어느새 70이 넘어 '늙은' 글쟁이가 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퍼덕이는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일 것이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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