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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맛…칼칼한 칼국수

[LA중앙일보] 발행 2015/10/3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5/10/30 18:45

밀이 귀했던 우리 선조들
제사상 올리던 귀한 음식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곱게 밀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칼국수.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곱게 밀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칼국수.

들깨칼국수

들깨칼국수

해초맑은칼국수

해초맑은칼국수

닭칼국수

닭칼국수

버섯매운칼국수

버섯매운칼국수

한국전쟁 후 서민 주식으로
최근엔 건강식으로도 인기


유난히도 길었던 여름. 여름 장마처럼 끈끈하던 여름밤을 뒤척이다 병이 나버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시간을 보낼 때 문득 '칼국수'가 생각났었다. 부드러운 국수발의 촉감과 뜨끈뜨끈 뽀얀 국물. 툇마루에 걸터앉아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곱게 밀던 엄마의 모습이 밀려왔다.

그 앞에 두 눈 말똥이며 턱을 괴고 앉아, 병풍처럼 돌돌 말려 정갈하게 잘려나가는 국숫발이 신기했다. 뜨거운데도 "시원하다"하시는 엄마의 감탄사나 어린 입맛이 그 뜨끈하고 시원한 칼국수 맛을 제대로 알았을 리는 없었지만, 지금도 먹고 싶을 때는 쫄깃한 향수가 입 안에 가득 고인다. 칼국수는 '마음의 손맛'이다.

그 흔하디 흔한 밀가루 국수가 예전엔 조상의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이었다. 유난히도 한반도에 밀이 귀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밀가루가 애용되는 중국에서 조금씩 들여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밀이 무성하게 자라기엔 한반도의 기후가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 밀을 수확하는 6월 유두 일이 되면 햇밀을 사당에서 올려 제를 지낼 정도로 귀했다. 또한 겨울 햇밀이 가장 맛이 좋아서 밀국수는 여름에 먹는 별미로, 더위를 막아준다는 속설도 전해 내려온다. 1년 내내 애타게 기다리던 탓에 이런 믿음이 보태진 것이다.

고려 땐 메밀칼국수, 조선에서 밀칼국수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의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신 구황식품인 메밀로 만든 칼국수를 먹었다. 조선시대 한글조리서인 '규곤시의방'에는 절면이라는 명칭의 칼국수와 유사한 음식 조리법이 등장한다. 주재료로 메밀가루를 쓰고 연결제로 밀가루를 섞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메밀가루를 사용해서 면을 만들면 끈기가 없어 뚝뚝 끊어지는데, 밀가루를 섞으면 끈기가 높아져 길고 가느다란 면발을 만들 수 있었다. 반죽을 얇게 밀어 여러 겹으로 접어서 채를 썰어 면을 만드는 방법이 등장했다. 바로 칼국수의 시초 조리법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반가요리연구가 강인희씨는 "옛 선조는 칼국수와 비슷한 국수들을 즐겼다. '칼싹두기'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방망이로 밀어서 칼로 굵직굵직하고 조각지게 썰어 익힌 음식이고, '건진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칼국수처럼 만들어 삶아내고 다시 장국 국물을 부어 만든다"라고 말했다. 궁중요리연구가 조경희씨는 "밀가루가 귀한 철엔 오이를 얇고 길게 채로 만든 다음 녹말물을 입혀 살짝 삶아내 장국에 말아 고명을 얹는 국수도 즐겨 먹었다. 밀가루 대신 오이로 대신할 정도로 국수를 좋아했고 넓은 의미로는 칼국수의 모양새라고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전쟁 이후에 '국민 음식'으로 부상

현재와 같은 칼국수의 모습은 1900년 초에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보면 '양밀가루를 물에 반죽할 때에 장을 조금 쳐서 주무르고 여러 번 친 뒤, 방망이로 얇게 밀어 잘게 썬다. 밀가루를 뿌려 한데 붙지 않게 하고 끓는 물에 삶아내어 물을 다 빼버리고 그릇에 담은 뒤에 맑은 장국을 붓고 고명을 얹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밀가루가 흔해진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다. 구호물자로 밀이 들어와 칼국수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부족한 쌀을 대신해 서민의 끼니를 때우는 주식으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일본인이 남기고 간 말린 멸치는 국수장국에 넣던 값비싼 소고기 자리를 대신해 대중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칼국수가 외식메뉴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다. 넉넉지 않은 지갑으로도 선뜻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칼국수가 불황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며 사랑을 받았다.

건강식으로 발전한 칼국수 조리법

'안동칼국수'엔 전통적 기법이 많이 남아있는데,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콩가루를 섞어 손 반죽을 한다. 담백한 사골 국물에 구수하게 말아내고 조밥을 곁들여낸다. 오메가 3가 풍부한 '들깨칼국수'도 일품이다. 부추즙을 넣은 반죽은 색감도 곱고 맛도 좋으며, 오래 반죽하고 숙성시간을 거쳐 더 쫄깃한 면발을 만들고 쉽게 퍼지지 않는다. 우동 면발의 원리와 비슷하다.

경남지방에서 즐겨 먹었던 닭칼국수는 모심기가 끝난 후 농민들이 영양 보충식으로 즐겨 먹었다. 웰빙 붐으로 해물칼국수의 인기 때문에 뒤로 밀려난 닭칼국수는 전보다는 접하기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웰빙 트렌드와도 잘 맞는다. 다른 동물성 식품에 비해 닭의 살코기는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 되는 까닭이다.

'버섯매운칼국수' 조리법도 인기다. 각종 채소와 민꽃게 등으로 낸 육수에 고추장과 된장을 8:2의 비율로 넣으면 얼큰하되 자극적이지 않다. 장칼국수의 일종이다. 국물에 우러난 고유의 맛이 강하므로 마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국수를 뜨겁게 말아 버섯을 고명으로 얹어낸다. '해초맑은칼국수'는 훈제 다랑어와 다시마로 우려낸 우동국물에 녹색 해초국수를 말아 갓김치를 곁들여낸다. 맑은 느낌이 나는 칼국수가 된다.

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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