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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눈이 부시게

동생에게 소포를 부치러 집을 나서는 길이다. 운전하고 두 세 집쯤을 지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것이 보였다. 어디를 가시느냐고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고맙다는 미소를 지으시고 손사래를 치시고 그냥 가신다. 스톱 사인에 정지되어 있는 내 차를 할머니가 지나쳐 가시는데 어깨에는 무거운 배낭을 메시고, 다른 한 손에 든 짐은 무거워서 마르신 몸에 비틀거리셨다.

그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은 지난달에 한국에 다녀와서 오랜만에 만났던 친정엄마의 모습과 겹쳐져서 일 것이다. 자식들을 만날 때면 무거운 것들을 꼭 대동하고 나타나는 모습이 영락없었다. 한 번 더 모셔다 드리겠다고 권해볼 것을 하는 후회와 함께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밀려와 눈물이 났다.

낯선 사람의 지나친 친절도 의심이 되는 세상이라고, 상대방의 마음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바로 여미었던 그 마음을 소포를 부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원망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최근 종영된 드라마 '눈이 부시게' 남은 두 편을 다 봤다. 여자 주인공이 시계를 과거로 돌려서 25살 나이에서 70대 노인으로 바뀐다는 판타지 내용이다. 드라마가 후반이 될 때 까지도 시계를 빨리 찾아서 시간을 되돌리길 바랬다. 또 젊은 여인으로 돌아와 남자 주인공과 멋진 로맨스가 이루어지길 바랬다. 그러면서도 여주인공에게 질병처럼 다가온 늙음을 통해서 노화를 성찰해보는 메시지가 있음을 간과했다. 드라마가 주는 핵심 메시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주인공이 잠에서 깨서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꾼 것인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꾼 건인지 하며, 장자의 호접몽 같은 소리로 반전을 이룬다. 이 반전을 통해서 드라마 전체를 다른 각도로 생각해야 했다. 그동안 깔려 있던 복선이란 장치를 다시금 곱씹으며 기억을 소환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친정집에 갔을 때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키웠던 고향집을 새로 지으시고 혼자 사신다. 물건을 버리지 못 하시는 성격 탓에 어수선하긴 했지만 무고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 뭐가 없어진다고 하시는 거다. 얼마 전에도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다. 경찰이 와서 카메라를 돌려보니 분실물도, 아무 침입자도 없었다 한다. 남동생이 경찰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조심스럽게 치매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천장에 있던 카메라가 생각났다.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은 카메라는 엄마 불안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수선한 곳을 탈출한다는 죄의식이, 시차를 적응해야 하는 본능처럼 무겁게 따라 다녔다. 엄마의 불안으로부터 난 유죄다. 결혼을 반대했던 엄마로부터 나를 지구 반 바퀴 넘어서까지 격리시킨 죄가 크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등가 교환의 법칙'이란 단어로 자신의 인생철학을 이야기 한다. 소중한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큼의 다른 소중한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나간 삶에서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서사 하나 가슴에 묻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오늘 내게 주어진 눈부신 반짝임만으로도 등가교환은 충분하다고 본다. 엄마에게도 남은 눈부신 날들이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그리고 또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원경 / 웨스트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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