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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낮아진 행복

미국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한 적이 있다. 사계절에 넉넉한 비가 내려주는 동북부는 큰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 풍성한 녹음이 가득한 숲이 사방에 자리 잡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살만한 곳이 되어 주고 있다. 늘 비슷한 기후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서남쪽은 비가 인색하게 내려 잎 넓은 큰 나무 보기가 쉽지 않다. 전봇대 같은 줄기 끝에 몇 개의 잎사귀가 아쉽게 팔랑거리는 그곳은 따뜻한 바람은 좋은데 메마르게 보이는 키 작은 나무들이 숲다운 숲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여행의 발길이 잠시 내륙을 향해 모하비 사막 근처를 맴돌았다. 온종일 달려도 메마른 대지 위에 바위들이 가득히 박힌 심심한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제대로 그늘을 만드는 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말라버린 관목 덤불만 가득하다. 그저 넓은 땅 위에 간혹 불쑥 솟은 바위산들이 황량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며칠을 그렇게 황야 속을 지내다 다시 서남쪽 동네로 돌아와서 내 눈의 간사함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메말라 보이던 그곳의 넉넉하지 못한 녹음이 가난한 잎사귀들의 마른 녹색이 마치 낙원의 수풀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여기가 이렇게 풍족한 자연 속의 동네였나 하며 황야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다.

친구 중의 하나가 낙후된 남미 어느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많았지만, 현지음식만을 먹어야 하는 사정이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 맛이라는 것도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몇 가지를 갖춘 동네에 도착하여 식사하게 되었다. 그때 아주 단순한 음식 하나 달걀 후라이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다는 경험을 전해준다. 너무나 쉽게 흔하게 가볍게 대하던 계란 하나에 감동을 하고 행복해했다는 말에 또 하나 행복의 지혜를 얻은 듯했다.

미국 동부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달리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가는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트래일 코스가 있다. 그 경험을 기록한 책들을 읽다 보면 비슷한 경험이 자주 나온다. 할 수 있는 대로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을 가지고 가는 탓에 제대로 된 식사는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저절로 체중 조절이 된다는 열악한 조건의 몇 날 며칠을 보내고 가끔 중간 보급을 위하여 코스 옆에 작은 동네로 잠시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곳에서 허술한 가게를 만나 허접한 음료나 간식을 먹게 될 때 그때의 행운과 느낌은 거의 황홀하다고 걷기쟁이들이 한결같이 한 입으로 칭송한다.



문명의 여러 가지가 잘 갖추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참으로 쉽게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누리고 산다. 또 그걸 이용한 사회생활도 편리하게 별 생각 없이 영위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마치 몇 분만 끊어지면 죽게 되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당연하게 여기며 소유하고 사용하면서도 행복이라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살아간다. 이상한 질병이 돌아다니고 그 대책으로 그 당연한 것들이 끊어졌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그 당연한 것들과 행복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을 보는 안목이 달라졌다는 다행스러운 결말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낮추어 잡는 행복의 기준과 안목만이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삶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다시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면 이것은 지금의 나쁜 사태 속에서도 한 가지 좋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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