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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성장배경을 엿볼 수 있는 곳 '에이브러햄 링컨 생가'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제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인기와 명성은 사망한 지 15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미국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명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기에 척박하고 가난한 곳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가 되고 정계에 진출해 대통령까지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돼서는 남북전쟁으로 분열돼 있는 나라를 통합해 연방을 보존했다. 30만 명이나 되는 흑인노예를 해방시켜 민주주의와 인권국으로서의 초석을 다진 것이 큰 업적이다.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며 게티즈버그의 명연설을 남겼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국가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시한 연설이었다.



그가 태어난 오두막을 재현해 놓은 켄터키 주 하젠빌을 방문했다. 링컨이 연방 하원의원과 대통령으로 당선된 곳이 일리노이 주이기 때문에 링컨 하면 일리노이 주를 연상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 동남쪽에 있는 켄터키주 벽촌이었다. 링컨이 외우다시피 했다는 1788년 판 가족용 성경책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출생지는 국가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었다.

하젠빌은 도시와 떨어진 농촌 지역이다. 더구나 그가 태어났을 당시인 1809년경에는 서부 개척자들이 드문드문 사는 인적드문 시골이었을 것이다.

사적지에는 1911년 11월 9일 지어진 대리석 석조건물로 된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1848년 새로 지은 링컨의 생가 오두막집의 파손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건물 안에 링컨이 태어날 당시의 통나무 집이 재현 돼 있다.

또 가족 농장이름인 '싱킹 스프링'에서 이름을 따온 샘도 보존돼 있다.

국가사적지 관리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전시관에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들이 있다. 링컨이 두살때 싱킹 스프링 농장의 소유권 분쟁에서 패해 10마일 정도 떨어진 노브 크릭 농장으로 이사를 갔고 그 곳에서 일곱살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후 인디애나를 거쳐 스물한살때 일리노이주로 이사했다.

링컨이 노예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노브 크릭 시절로 이곳에 있던 리틀 마운트 침례교회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목사가 설립한 교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링컨이 살던 켄터키 하딘 카운티에는 16세 이상의 백인이 1627명이었고 노예는 약 1007명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링컨의 집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테네시주 내쉬빌로 팔려가던 노예들이 통과하는 길목에 있어 노예제의 참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루이빌을 방문했을 때 쇠사슬에 묶인 채 보트에 실려 팔려가는 노예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노예제 폐지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한국도 그렇고 내가 살고 있는 미국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 그의 58세 생애를 상징하는 58개의 계단이 있는 생가 기념관을 향하며 "링컨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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