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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드라마 속 '황제'와 현실 대통령

최근 역사 대체드라마 '황후의 품격'을 즐겨보고 있다. 지난 1910년 패망한 조선왕조가 아직도 계속돼 현재에도 대한제국이 지속되고 있다는 가상 설정이다.

이미 없어져 버린 '대조선국' 혹은 '대한제국'에 대한 내용이 드라마 속에서 매우 그럴 듯해 한국역사를 잘 모르는 K팝 외국인 시청자라면 지금도 대한제국이 있다고 믿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영국에서 크롬웰의 공화정이 무너지고 왕정이 복고된 적이 있기 때문에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상 역사의 시작은 작가 복거일이 1987년에 내놓은 소설 '비명을 찾아서' 부터다. 또 이를 영화화해 2002년 개봉한 '2009 로스트메모리즈(주연 장동건)'도 같은 종류다. '비명을 찾아서'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온갖 차별을 참다못해 상하이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다는 내용이다. '2009 로스트메모리즈'는 한국 내 반일세력이 일본왕실을 옹호하는 세력과 격돌한다는 내용이다.

미국도 역사 대체드라마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아마존이 제작해 현재 시즌 3을 내놓고 있는 '고성의 남자(The Man in the High Castle)'의 경우다. 아마존은 마케팅을 위해서 뉴욕 지하철에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장식했는데 이게 큰 비난을 받고 철거되는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차대전에서 나치가 승리해 미국을 일본과 독일이 절반씩 차지, 미국 없는 세계가 전체주의 속에서 신음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역사 대체드라마가 공중파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드라마 '궁'은 1945년 광복에 이어 왕정이 복고돼 황실이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가짜 역사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궁'이나 '황후의 품격'이나 모두 성공한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궁'이 왕위계승권과 관련, 황궁 내의 아기자기한 내용을 담은 코미디 멜로물에 가까웠다면 '황후의 품격'은 황제의 탈선과 이를 둘러싼 음모가 난무한 액션 코미디물이라는 것 정도다.

'궁'을 보며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왕조는 멀쩡한데 침략을 당해 멸망한 조선 왕가의 안타까운 '진짜 현실' 때문인지, 조선 황실이 복원돼 일본이나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했었더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아가서 수천 년간 군주에 의해서 통치됐던 한민족에겐 '제왕적 대통령'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결론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12년 만에 비슷한 설정의 '황후의 품격'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비록 드라마 속 세상은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대한제국 황실은 권위 있고 책임을 다하며 국민을 위하는 점잖은 모습이 아니라 패망하기 직전의 한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권모술수가 자행되고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하찮게 여기며 국민을 개돼지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이승만이 이씨 왕가 사람들의 한국 입국을 막았다는 것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한국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포인트를 잘못 찍은 질문 때문에 '감히 대통령을 당황하게 했다'고 해서 '싸가지 보다 실력 부족'이라는 인신공격성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또한 이런 착각은 우매한 국민 탓이 아니고, 바로 그 대통령이나 측근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행인 것은 '황후의 품격'에 나오는 폭군 황제는 현실에선 북한에만 있다는 점이다. 이게 그냥 드라마라서 정말 다행이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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