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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인생의 가을이 ‘성숙’의 가을이 되려면

친구가 사업을 시작했다. 애틀랜타의 도심,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작은 네일 샾이다. 얼마 전 주인이 은퇴하면서 그 바통을 친구에게 건넸다. 아담한 네일 샾의 주인이 되더니 밤낮으로 동동거린다. 요즘,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나.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은 그녀의 달뜬 마음이 맑은 유리잔의 주스처럼 훤히 내비친다.

낡은 카펫을 거둬내고 조명을 바꾸고 페인트도 새로 칠했다. 덩달아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광고까지 구상하느라 연일 밤을 고심 중에 있다. 그것도 모자라 주 6일을 꼬박 일하고 일요일엔 질 좋은 재료를 좋은 값에 사려고 동분서주, 애틀랜타 도심을 휘젓고 다닌다니 늦바람이 무섭다. 친구의 얼굴이 딱 요즘 만개한 벚꽃 같다. 중년에 사업을 시작한 그녀가 함박웃음을 달고 한껏 달떴다. 그녀를 지켜보는 내 몸에도 돌연 뜨거운 피가 도니 열정 많은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도 지복이다. 청춘의 자장에서 살짝 벗어난 친구의 열정이 어찌나 뜨거운지, 단박에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것 만드느라 제가 며칠 밤을 새웠어요.” “세상에! 아주 예술 작품이네! 출중한 실력과 꼼꼼한 성격이 다 드러났어요.“ “견본을 만들면서 이것저것 그러모으고 신경 쓰니까 직원들이 얼마나 눈치 했는지…막상 완성하니까, 다들 편리하다고 아주 잘 써요.” 아뿔싸, 형형색색 수십 가지 색깔을 입힌 손톱 견본을 만들어 세워 놓았는데 고운 색깔을 입혀놓은 것이 영락없는 사람의 손톱이다. 프로 티가 좔좔 흐른다. 한가지 일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쳤으니 이젠 심드렁할 법도 한데, 새로 도모하는 일인 양 지극정성이라니. 눈이 반짝반짝, 세상만사에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같다. 먹고 사는 일과 자신의 청춘을 등가 교환하면서 맵고 신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산전수전, 우여곡절을 얼마나 겪었을까. 나 같으면 멀리 도망가고 싶을 텐데, 아직도 젊은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사업인 양 전심전력, 최선을 다하는 그녀가 마냥 존경스럽다. 뭇사람에게 귀감이 될 중년의 모습이렷다!

“제가 주인이 되니까 저쪽 뒤에서 직원들이 일하면서 하는 소리까지 다 들려요.” 그만큼 새로 시작한 중년의 업에 신경줄이 팽팽하다는 이야기일 터. 자신이 벌여 놓은 일에 관한 책임과 긴장과 의욕이 활화산처럼 솟구치고 있다는 말일 게다. 이처럼 중년에 도모하는 일은 노력과 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지속적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촉수를 뻗어야만 열매를 거둔다. 기실 중년은 마음에 욕망만 가득할 뿐, 하루가 다르게 몸이 무겁고 빠르게 쇠퇴하는 뇌세포 때문에 감각이 둔해진다. 금방 생각난 아이디어가 뒤돌아서면 까무룩 잊히니 마음이 나부룩 가라앉기 일쑤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친구처럼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것, 더불어 반생을 살고 얻은 지혜나 깨달음을 거머쥔 것. 이 모든 것이 중년의 성공을 견인하는 성장동력이다. 여기에 또 한 번 꽃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력까지 풀가동하면 중년의 과업은 이미 이룬 거나 다름없다. 보이지 않은 곳에 찬란한 결과물이 예비되어 있으니까.



“인생의 가을에는 풍요로운 열매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공을 이루어 명성을 얻지는 못했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가을은 ‘성숙’의 가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스스로 인정할 것이 하나 없이 세월만 보내왔다면 인생의 가을은 말 그대로 ‘빈 곳’으로 느껴질 것이다. 날이 갈수록 낙엽이 질 뿐이다.” <‘지적으로 나이 들기’ 중에서>

쉼 없이 연일 밤을 새워 가며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아이템을 불러와 실행하는 지인이 피곤한 기색 없이 팔팔한 것은 인생의 ‘성숙’한 가을을 준비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이것이 바로 인생의 가을을 ‘성숙’의 가을로 이끄는 힘일레라

세월은 얄짤 없이 질주한다. 갱년기를 빌미 삼아 게으름 피우고 늘어지고 싶은 유혹에 한두 번 넘어가다 보면 부지불식간 중년이 사라진다. 중년을 도둑맞고 나면 인생에 무엇이 남을까. 베짱이처럼 인생의 겨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내 인생 끝나버렸다고! 하여 나는 오늘도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린다. 내 중년의 일은 삶을 기록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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