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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봄의 소리

흐르는 계곡 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 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 숲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띄우는 대지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오세영시인의 '3월'전문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밝게 비쳐 든다. 창문을 조금 열자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상쾌하다. 겨우내 잘 보이지 않던 새들이 날이 풀리자 마당으로 모여든다. 네 이름은 뭐니? 노랑턱멧새? 노랑지빠귀? 가슴팍에 노란 털이 있는 참새 모양인 걸로 봐서 노랑턱멧새라고 생각된다.

봄은 소리로 온다. 여기저기서 겨울을 벗어 던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개울을 따라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물 흐르는 소리가 전보다 경쾌하다. 어디서 겨울을 보내고 왔는지 청둥오리 한 쌍이 첨벙거리며 물질을 한다. 산책을 하던 몇몇 사람들이 길을 멈추고 서서 사진을 찍으며 통성명을 한다.



벌써 양지쪽엔 크로커스가 피어난다. 무더기 무더기 소복하게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이명이 들리는 듯하다. 구군들이 땅을 밀고 나오려는 안간힘, 해산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물미역 걷어 올리는 소리, 미나리 다발채로 흔들어 씻는 소리, 복수초 쌓인 눈을 뚫고 피어나는 고향의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것 같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웃음소리, 정글짐을 기어오르며 질러대는 함성, 아이들보다 더 목소리 커지는 엄마들의 수다, 소리가 고조시키는 오후의 활력으로 손주를 데리러 온 할머니들조차 발걸음이 빨라진다.

봄엔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은 샘이 많고 변덕이 심하다. 바람은 그 비유의 다양성 때문에 은유의 대상이 되기 일쑤여서 생을 흔들어 대는 어떤 곡절로 비유되곤 한다. 발레리는 '해변의 묘지'라는 시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지'라는 구절을 통해 바람의 순기능을 시사했다. 바람에 밀려 극단의 벽 앞에 섰을 때 사람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 포기하느냐 아니면 살아봐야겠다고 불끈 주먹을 쥐느냐. 바람은 우리를 삶 쪽으로 질주하도록 부추긴다.

봄은 캔버스 위에 색을 칠하기 위한 첫 붓질이 시작되는 때다. 대지가 피워낼 꽃들과 초록에 대한 경건한 의지로 제의를 치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침묵조차도 데시벨이 측정되는, 내부의 힘으로 팽창되어 가는 땅의 장엄. 모든 쇠한 것들을 갈아엎고 새롭고 싱싱하게 만들어 가려는 역동으로 꿈틀거린다.

땅만큼 내구력이 강한 곳이 또 있을까. 수억 년을 변함없이 복원시키는 회복력이 있어 우리의 삶이 삶이 되게 한다. 젖이 불은 산모처럼 수유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 살아 있는 것들의 어미가 된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 있어 발 시리지만 이미 봄은 문 앞에 당도했다. 북향인 현관문을 열어둘 수는 없지만 눈 녹은 창가는 오수가 즐겁다.

삶의 애환이 있다고 한들, 외로움이 크다고 한들 어떠랴. 지금이 봄인 것을. 어디에서 새싹이 돋아날지, 어디에서 꽃이 피어날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삼월인 것을.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땅이 해낼 놀라운 일들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축복된 시간이다. 생명을 지닌 것들의 숭고함, 살아 있는 것들의 비장함, 살아 보려는 의지의 처절함으로 삼월은 벅차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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