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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소중한 추위

한성윤 / 나성남포교회 목사
한성윤 / 나성남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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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1/28 종교 27면 기사입력 2020/01/27 17:43

뚝 떨어진 수은주에 모두 움츠리며 잠을 청하지만 비가 그치면 눈치없이 등장하는 따사로운 남가주 햇살 덕에 뒤뜰 사과나무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이러다 봄이 찾아오면 잠이 부족한 가지들은 꽃망울을 깨우기보다는 밀린 잠을 자려 투정을 부릴지 모른다. 아마 이번 봄에는 피곤에 시달린 사과꽃을 볼 모양이다.

겨울은 봄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깊은 잠은 내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둡고 추운 날들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실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다. 나무는 추위를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워지고 있다.

찬란한 여름을 보냈던 나뭇잎이 가을에 자신을 던지고 나무를 위하듯, 앙상해 보이는 겨울 가지들은 겸손과 절제로 나무를 아름답게 만든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꽃망울과 새잎이 돋는 시간을 준비한다. 언뜻 보아도 나무가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겠지만, 나무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으신 계절은 모두 소중한 것을 배운다.

사계절을 아는 우리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은 있겠지만 소중하지 않은 계절은 없다. 어둡고 음침해 보이는 계절은 밝은 내일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만 기다리며 걷는 것이 아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꽃길이냐고 묻는 우리에게 성경은 누구와 같이 가냐고 묻는다.

우리는 추위를 잘 보내지 못해서 자주 피곤하게 일어난다. 아픔과 눈물도 지나가면 꽃은 핀다고 일어난다. 피곤한 꽃도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만,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술을 한껏 하늘을 향해 올리며 향기를 뿜어내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힘들다. 추워지면 잎을 떨구고 바람이 불면 눕고 밤이 오며 자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 우리는 낮아지는 법을 배우고,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그를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신다. 어떤 나무는 상록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푸른 나무는 푸르기 위해서 매일 잎을 떨구고 매일 새잎을 준비한다. 낮아지는 시간이 어찌 힘들지 않으랴. 잎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어찌 슬픔이 아니랴? 좋아하지 않는 시간이 소중한 것은 그 시간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웃음이 기다리거나 배움이 있기 때문만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보낸 이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했기에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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