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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괴질과 괴담

김용현 / 언론인
김용현 / 언론인 

[LA중앙일보] 발행 2020/02/22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20/02/21 19:53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치르던 14세기 중반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페스트(흑사병)라고 불린 이 병은 100% 가까운 치사율을 보이며 유럽 전역을 무서운 속도로 휩쓸었는데 괴질을 퍼뜨린 주범이 유대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대인에 대한 집단 테러가 자행되기도 했었다. 괴질은 그 보다 더 무서운 괴담을 낳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조 21년인 1821년 무서운 큰 병이 돌아 무려 10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했다. 뒤에 콜레라(호열자)로 판명된 이 괴질은 쥐가 잠자는 사람의 다리를 갉아먹으면서 옮겨진다고 해서 쥐의 천적인 고양이의 영혼에 기도를 하고 대문이나 방안에 종이로 만든 고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했다. 미신에 가까운 풍문이 수없이 횡행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에도 전염병이 많이 돌았다. 장티브스가 창궐했는데 더러운 식수로 전염되는 장티브스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흉악한 병이었다. 휴전 후에는 결핵과 말라리아(학질)도 못지않게 심했는데 학질을 떼게 한다며 헌 고무신의 밑창을 불에 태워 물에 섞어 먹게 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19가 한국에서 한때 수그러드는 듯 했으나 지역 감염으로 확산되면서 확진환자가 200명을 넘는 새로운 사태를 맞고 있다. 주말에 배웅할 사람이 있어 LA 공항에 나갔더니 서울로 떠나는 탑승객들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 마냥 모두가 비장해 보인다. 그러니 지금 서울과 대구, 청도 등 지방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불안하랴.

사태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를 뺨치는 각종 괴담과 가짜 뉴스들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들을 악의적으로 부풀리고 재생산하는 유튜버들이 있는가 하면 있지도 않는 확진자가 시간대 별로 어디 어디를 다녔다는 허위정보를 퍼뜨려 시민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확진자는 의료진과 싸우기도 했다는 가짜뉴스도 떠돈다.

시민사회에 퍼지는 악성 루머를 조장하는 데에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생각이 큰 역할을 했다. 집권 여당은 야당에 손을 내밀어 국가적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아량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연일 입씨름만 벌였으며, 야당은 병명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굳이 ‘우한 폐렴’을 고집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국회 대책위원회 구성을 실기하고 말았다.

국가가 재난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 하고 정부의 대응이 미흡할 때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국가의 재난 시에 정치인들과 언론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정치나 언론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객관성과 보편성을 벗어나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아무 책임감 없는 1인 유튜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슬기로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더 이상의 큰 피해 없이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01년 구제역과 2003년 사스, 조류독감,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어 오는 동안 정부의 방역 관리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진 데다 이번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정했듯이 감염의학에 관한 젊은 의료진의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한국인의 저력, 불굴의 힘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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