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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네트워크] 독서·출판계에 부는 코로나 강풍

신준봉 / 한국중앙일보 전문기자
신준봉 / 한국중앙일보 전문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20/02/22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20/02/21 19:54

경고음이 갈수록 커진다. 코로나19가 집단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경고음 말이다. 하룻밤 새 확진자가 크게 늘고, 한 종교집단이 확산에 관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사태의 현주소를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독서·출판계는 이미 병의 영향권에 들었다. 기자가 자주 찾는 정독도서관은 21일부터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휴관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서울도서관은 중국을 다녀온 지 14일이 지나지 않은 사람의 대출도서를 반납받지 않는다. 도서관에 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교보문고는 신천지 교회, 한양대 병원 등 확진자가 방문한 곳으로 도서 배송을 하지 않는다. 택배 회사가 배송을 거부해서다.

코로나 시대에 슬기로운 생활법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학교나 직장을 안 갈 수는 없지 않나. 부득이 주말 외출을 자제한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실내 활동이 여럿 있겠지만 서가의 먼지를 털어내고 숙제처럼 머리를 짓눌러 왔던 회심의 책 한 권씩 꺼내 들면 어떨까.

명색이 문학·출판 담당인 기자가 최근 섭렵한 책 가운데 머리를 출발해 가슴까지, 인지적 공감에 이어 감동까지 선사한 책을 고르라면 다음 두 권이 떠오른다. 인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함돈균씨가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총장으로 있는 교육 공학 전문가 폴 김 등과 함께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다른 하나는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정치철학자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의 강연 등을 묶은 ‘책임과 판단’이다.

‘컬처 엔지니어링’에서 함씨 등은 아직도 대학 간판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헛된 망상,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한국인들의 후진적인 집단 심리를 난타한다. 사회 안전망, 사회적 신뢰의 부재를 원흉으로 꼽는다.

아렌트는 집단 범죄였기 때문에 정상참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맞서 구체적인 범죄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단죄를 강조한다. 아렌트에게 역사에서 교훈을 얻겠다는 발상은 동물 내장을 검사하는 것보다 조금 유용한 일일 뿐이다. 우리 현실에 대입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제 만행에 대해 사과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일이 된다.

산문이 길어서 부담스럽다면 시 몇 줄 펼쳐 보면 어떨까. 독일 철학자 칸트가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예술 장르라고 분류했던 시 말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외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광화문 글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에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지금 걸린 문안은 윤동주의 동시다.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희망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글판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척박한 땅을 적셔온 시원한 찬물 한 그릇이다. 기적 같은.

그 한 사발 받아들고,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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