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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58> 북미 식민사 24-북해 해전5

영국의 아웃복싱 전술에 에스빠냐 선단이 계속 조금씩 피해를 보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에스빠냐 전단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포전에는 막대한 양의 포탄이 필요하다.

중세 최초의 대해전인 북해 해전은 최초의 대규모 함포전이었으나 포는 작열탄도 아닌 그냥 쇳덩어리 포탄을 쏘았고 명중률이라야 수십 발을 쏘아서 한 발이 맞을둥 말둥 했다. 원래 포 성능도 시원찮은 데다가 육지와 달리 계속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서 쏘는 포탄의 정확도는 육전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쓰시마 해전(러일전쟁)에서 정예 일본 해군이 쏘는 포의 적중률이 겨우 10% 정도였다. 그런 데다 큰 배는 그런 포탄을 수백 발을 맞아야 침몰했으니 대형 함정 한척을 침몰시키려면 계산상 수천 발의 포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영국은 자신들의 항구에서 포탄을 보급받을 수 있었으나 에스빠냐는 네덜란드 총독 파르마 공작의 전단과 합류해야 포탄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육전의 용장으로 소문난 파르마 공작은 무적함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전함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합류 요청을 받았을 당시 네덜란드의 2개 전단이 앞바다를 봉쇄하고 있어서 전대를 출동시킬 방법이 없었다.



에스빠냐 함대가 도버 해헙 인근에 도착하자 하워드와 드레이크는 준비했던 화선 공격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규모가 큰 화선들이 공격을 시작하자 당황한 에스빠냐 함선들이 닻줄을 끊고 도주하면서 표류하기 시작했고 함대의 재집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드레이크는 칼레 인근 해상에서 지리멸렬된 에스빠냐 함대를 공격하여 다시 몇 척을 침몰시키고 몇 척의 선박을 나포했다. 이미 에스빠냐 함대는 큰 손실을 입은 데다 탄약과 식량 그리고 식수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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