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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칼럼] 어느 날의 그리움

비 온 후의 나무와 숲은 함초롬히 자신들을 뽐내며 싱그럽게 다가온다. 숲의 옆을 스쳐 지나오는데 진한 숲의 향기가 유혹하듯 강하게 다가온다. 향기에 취해 잠시 머물며 숲 속을 기웃거린다. 산책길에 늘 만나는 다람쥐들이 인기척에,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숲 속 어디론가 사라진다.

가는 곳마다 깨끗한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나무들이 건강하게 도시와 대지를 지킨다. 나무는 목을 뒤로 완전히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고 땅도 사람도 커서,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아낙네에게는 이곳이 신기한 거인국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새벽이면 온 숲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보기도 한다. 한 여름 저녁 해질 무렵에 드넓은 하늘가를 물들이는 노을 아래로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숲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것도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광경이다. 이곳의 자연은 어찌나 매력적인지 산책 때마다, 여행 때마다 감탄한다.

미국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다. 믿을 수 없이 크고 아름다운 대지를 볼 때마다 이곳을 누비던 늠름한 인디언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탄 말들이 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말 달리는 강인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을 어떻게 사고 팔 수가 있느냐’고 하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잊혀져 가는 인디언들의 숨결을 숲과 대지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잊혀져 간다. 그렇게 서로에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영원한 승자는 대지 뿐이다. 자연이다. 영원한 승자인 광활한 대자연의 나라인 미국은 축복 받은 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 나는 매캐한 스모그와 황사가 날리는 작은 나라 한국이 그립다. 비를 맞으면 안 될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각한 서울이 그립다. 끈끈한 피붙이들과 오랜 친구들이 있는 그곳이 그립다. 분주함과 복잡함으로 모두가 종종걸음을 해야 하는 한국이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 소란스러움과 복잡함 속에서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개나리꽃과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목련이 피어 오르는 그곳은 지금 나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봄이면 온갖 나물과 채소가 쌓이는 시장의 난전을 기웃거릴 때, 풍겨오던 그 나물의 향기로운 내음이 코 끝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여름이면 찜통 같은 습한 더위와 가을이면 온갖 나무들이 노랗게, 그리고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드는 고국의 산천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카트가 얽히는 마켓에도 가고 싶다. 광화문 거리와 삼청동의 고즈넉한 뒷골목을 걷고 싶고, 다닥다닥 소품가게가 즐비한 인사동에 가고 싶다. 내 나라는 좁고 소란하고 그다지 이상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그곳은 삶이 부딪치는 소리가 있고, 무엇보다 지난날의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익숙한 곳이다.

심한 경쟁 속에서 이악스러워진 사람들이 목청 높여 싸우기도 잘하는, 그러나 적어도 총질은 하지 않는 좋은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갑자기 그리움이 솟아 오른다. 그러고 나면 마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인 양 망연자실 깊은 한숨을 삼키기도 한다. 마음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는 서울을 향해 매일 달려 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된 서울을 향한 마음이다. 왜 모든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모르겠다. 소중한 것들을 떠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고 사랑했던가를 깊이 알게 되니 말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곳을 떠나게 되면 이곳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그때나 알게 될 것이다. 그때는, 미국 남부의 따뜻한 겨울과 날마다 아름답게 열리는 하늘과 사철 우거진 숲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또 하나의 그리움의 병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워하기 위하여 그리워할지라도 그리움은 언제나 절박하고 오늘은 그 그리움이 유난히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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