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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애첩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24 14:27

글을 쓰거나 대화 중에 영어로는 그냥 ‘마이 와이프(my wife)’라고 하면 되는 우리말이 애매할 때가 종종 있다. 아내, 마누라, 집사람, 처, 여편네, 내자 등을 흔히 쓰는데 경우와 상황에 맞게 골라 써야 한다. 그뿐 아니라 앞에 붙는 소유격이 ‘내’인지 ‘우리’인지도 결정할 일이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 표현에 익숙한 탓인지 내 아내, 내 처, 내 마누라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우리 마누라, 우리 집사람이 덜 어색하고 자연스럽다. 하긴 내 마누라를 우리 마누라라고 하는 말을 듣는 서양인이 기절초풍하지는 않더라도 일처다부제를 의심할지 모른다. ‘내’를 써야 할 곳에 ‘우리’를 쓰는 일은 이뿐이 아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 등등.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글이 길어진다.

내 모교 동창회 자유게시판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서 자기 부인을 애첩이라고 호칭하는 동문이 있다. 축첩제도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폐지된 지가 무릇 몇 년인가? 그 동문이 자기 부인을 어여삐 부르는 애칭임을 곧 알아챌 수 있었고 약간 귀에 거슬렸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동안 그의 글에서 같은 호칭을 계속 듣다 보니 지금은 다소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이젠 별스럽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소 머리를 갸우뚱했던 것도 사실이다. 중인환시리에 자기 부인을 그리 부를 수 있는 그의 용기(?)와 해학성이 돋보였다.

알다시피 첩이란 신분 사회에서 정실부인이 아닌 정실부인보다 신분이 낮은 다른 여자이고 첩은 혼인한다기보다는 들이는 것이다. 그냥 데려온다는 뜻이다. 첩을 들이면 ‘축첩’이 된다. 철저한 남성우월주의가 반영된 첩 제도, 그리고 첩의 자손이 받아야 했던 여러 가지 차별대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다 아는 얘기다. 옛 속담에 “첩은 돈 있을 때 첩이다” 하였거니와 요새도 부자나 잘 나가는 사람들이 소위 세컨드를 데리고 사는 일이 있고 큰 재벌 총수들의 알게 모르게 하는 첩 생활이 더러 언론매체에 가십성 기사로 보도되기도 한다.

미국에서야 자기 부인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면 그만이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내를 지칭하는 마누라, 처, 집사람, 와이프, 아낙, 안사람, 여편네, 임자 등등 모두가 본처, 정실부인의 뜻이 있고 첩은 아니다. 애첩에 ‘사랑 애’자가 앞에 붙으니 사랑하는 첩이다. 첩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첩 중에서 제일 애지중지하는 여인이 애첩이다. 일반적으로 애첩은 본처나 여타 첩보다 젊고 아름다운 것이 보통이다. 막말로 여우 같은 여자, 남자를 홀리는 여자다.

애첩의 전형은 성공한 사람과 돈 있는 사람을 좇고 남자에게서 대가를 요구한다. 한 때는 ‘애첩기질’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기도 했다. 애교가 철철 넘치는 여자, 본처와는 달리 기혼 남성이 온갖 세상사를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섹스를 즐기게 해주는 여자가 그런 여자다. 경제문제, 자녀문제, 시댁과 친정문제는 본처와 다룰 문제요 애첩과 있을 때는 나 몰라라 해도 된다. 한참 되었지만, 자신을 애첩기질에 비유하며 ‘애첩기질 본처기질’이라는 책으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유명인사도 있다.

엄격히 따지고 들면 자기 본부인을 애첩이라고 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애첩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자극적이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나도 한번 써볼까 했지만 도통 잘 안된다. 내 아낙을 대놓고 애첩이라고 하기엔 내 사고체계가 너무 고루하고 구닥다리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서 불현듯 생각이 애첩에 미쳤다. 나는 느닷없이 옆에 누운 아내를 보고 “이봐 애첩” 했다. “뭐라고요? 아니 여보….” 순간적으로 어이쿠 이건 아닌데 하고 나는 얼핏 돌아 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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