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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무한리필


이따금 점심 먹으러 들르는 한국음식점에 새로운 메뉴판이 나왔다. ‘육해공 삼겹살 무한리필’이라는 게 눈에 띄었다. 삼겹살이라는 세 글자가 없었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뻔했다. 온갖 육해공 고기를 불판에 구어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말 아닌가. 이를 두고 고기 뷔페라고도 한다고 옆에서 귀띔해 주었다. 내가 과문한 탓으로 한국에 이런 식의 메뉴나 음식점이 있는지 한참 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뷔페 음식점이야 오래전부터 있지만, 생고기만을 전문으로 얼마든지 먹는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 같다. 우리가 자랄 때는 무슨 날 아니면 고기 먹기 어려웠고 모르긴 하지만 넉넉한 세상이 된 지금도 고깃값이 만만치 않으니 이런 메뉴도 생긴 것 아닌가 한다.

내가 미국 오기 전 한국에서는 무료 리필이란 없었다. 미국에 와서 커피나 소프트 드링크를 공짜로 리필해 주는 일이 무척 신기했다. 땅덩이가 무지하게 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니 도량도 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걸러 낸 물 그리고 설탕물(청량 음료), 네가 마시면 얼마나 마시겠냐. 실컷 마셔라!’ 하는 것 같았다. 커피나 청량 음료수를 무료로 리필해 주는 것은 미국의 특유한 관습이다.

이미 19세기에 유럽인들이 미국 카페에서 인상 깊었던 일로 커피 리필을 꼽고 있다. 그때 나온 책(1890년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마 무한리필은 미국인들의 유별난 커피 사랑과 관대함 그리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커피와 청량음료 무료 리필을 해주는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뿐이라고 한다. 설탕의 과도 섭취와 비만의 상관관계가 알려지면서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설탕이 든 음료수 리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 내 몇 주에서도 유사한 입법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도 본 일이 있다.

무료 리필을 악용하는 얌체들은 맥도날드, 버거킹 같은 체인점에 예전에 샀던 커피 컵을 들고 들어와 리필을 요구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큰 보온병에 커피를 따라 달라고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미국에서도 무료 리필이 전 같지 않다. 내가 가끔 들르는 집 근처 맥도날드에는 “일단 점포를 떠난 뒤에는 리필은 안 된다(Free refills limited to the same store visit)”는 경고문을 최근에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스타벅스는 리필은 레귤러 드립 커피나 티(차)로 제한하고 카푸치노나 라떼 등은 안된다. 점점 메마르고 각박해지는 세상인심이 커피점에도 미친 것 같다.



한국 음식점의 생고기 무한리필은 ‘무한’이 셀링 포인트다. 무한이라면 한도 끝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한도 좋지만, 고깃값이 녹록지 않은 한국에서 무한리필은 잘못하면 장사 거덜 나기 십상이다. 어느 대학교 후문에는 체육동아리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무한리필 고깃집이 근처에 생겼다가 3일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첫날은 축구부의 회식이 있었고, 다음 날은 야구부 그리고 셋째 날은 미식축구부의 회식이었다. 실제로 ‘운동부 회식 불가’를 식당 입구에 붙여놓은 곳도 많다고 한다. 내가 대학 럭비부에 있을 때 오후 연습 끝나고 목욕 후 우르르 몰려가서 소불고기 4~5인분을 게 눈 감추듯 하던 일이 떠오른다. 무한리필이 존재하지 않던 때였지만 팀 매니저는 우리가 얼마를 시키던 신경 쓰지 않았고 우리는 세상 만난 듯했다.

한국의 무한리필에는 싸고 질 나쁜 고기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요새는 뷔페식 술집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음식점에서 제일 마진이 큰 건 술과 음료수이기 때문에 고기에서 손해 봐도 술과 음료로 봉창하겠다는 전략이다. 내가 가는 도라빌 식당도 저녁때는 고기 뷔페식 술집이 된다. 술과 음료수가 무료 리필이 안되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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