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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평범한 날의 작은 행복

일상이 아무리 분주해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했던 어떤 행위를 반성하거나, 무엇인가를 결정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차 한 잔 마시면서 의자에 기대앉아 창밖을 보거나, 마당을 산책하는 정도다. 고작해야 일 이십 분 정도의 휴식이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다 보면, 내가 했던 일에 대한 내 진심을 돌이켜볼 수 있어 좋다. 자신의 속내를 살피는 혼자만의 은밀함 때문인지, 진솔한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아 행복하다.

요즘은 썬룸에서 쉬는 시간을 보낸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얼마 전 입소한 할머니의 이삿짐에 묻어온 자잘한 화분들 덕분에 썬룸이 그린하우스 처럼 바뀌었기 때문이다. 화초들을 살펴보다가 화초를 즐겨 가꾸었던 젊은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슬며시 혼자 웃기도 하는 모양이다. 혼자서 웃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옆에 와서 뭐가 그렇게 좋아 웃냐고 묻는다. 행복해서 웃지요, 라는 게 내 대답이다.

행복감이란 게 어느 한순간의 감정이라선지,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가끔 행복의 가치나 의미를 잘못 알고 남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뜬구름 잡는 헛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생사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내 생각의 방향이 긍정적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혼자 행복해한다.

노인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을 알게 된다. “그게 뭔데?” 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대답은 간단하다. ‘긍정적 사고의 힘’이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물통에 물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 반 통의 물을 “이젠 물이 절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느냐, “아직 절반이나 남았구나.”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무의식중에 나쁜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생각 바꾸기를 반복하고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노인은 삶에 대해 긍정적이다. 비록 몸은 나이가 들어 지치고 아프지만, 의욕이 있다.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있으니까, 죽는 날까지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다. 늘 즐거움을 찾아 자신을 스스로 돌본다.

낮에 일하는 탓에 저녁 시간에 취미활동과 운동을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부터 밤에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더니, 어두워진 시력 때문에 밤 외출을 접어야겠다고 했다. 밤 운전용 안경을 껴 보라는 내 말에 노안에 무엇을 낀들 눈이 밝아지겠냐며 반신반의하더니, 새 안경을 찾아 쓰고 보니 시야가 훨씬 뚜렷해 보인다고 한다. 나이 탓이라 돌리며 우울해했던 친구도, 나도 함께 운동할 수 있는 행복을 다시 찾았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감이 나는 좋다. 바삐 움직이는 일터의 발걸음 소리에서,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라는 아이들의 안부 문자에서, 식구들의 밥을 푸기 위해 김이 폴폴 날리는 밥솥을 열면서, 읽던 책에서 마음에 쏙 드는 글귀에 밑줄을 그면서, 고요한 새벽 머리맡 전등 아래서 톡톡톡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끄적일 때, 나는 정말 행복하다.

“사람이 불행한 건 자기가 현재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옙스키의 명언이다. 건강을 잃었을 때, 건강함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달았던 경험 때문인지, “돈이 생기면, 인정을 받으면, 여유가 생기면”하는 기대감에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 감회 깃든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의 행복을 즐긴다.

썬룸 창가에 놓인 선인장 잎사귀 끝에 어제까지 없었던 꽃눈이 뾰족이 코를 내밀었다. 맨 끝 잎사귀에서만 딱 한 송이씩 꽃을 피운다더니, 세상에나! 정말 경이롭다. 식물을 살피며 느끼는 행복감도 이럴진대, 어찌 사람이 자신을 살펴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랴. 작은 선인장 꽃눈 앞에서 깨닫는 삶의 이치. 그래서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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