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옥순 칼럼] 졸업의 문턱에서 2세들이 활짝 피워 올린 꽃!

학부모도 학생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던 구두시험이 2주간에 걸쳐 치러지고 급기야 막을 내렸다. 애틀랜타 한국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면 한국어로 에세이를 쓰고, 더불어 자신이 쓴 에세이를 머릿속에 저장하여 일목요연하게 구술하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른바, 졸업 한 달 전에 치르는 ‘졸업논문 구두시험’이다.

유독 올해 졸업반 학생들은 구두시험을 앞두고 얼어붙어 있었다. ‘구두시험 점수가 안 좋으면 졸업을 못 한다’는 나의 으름장 때문이었을까? 시험 일정이 잡히기 무섭게 일제히 화석처럼 굳은 얼굴로 자신들이 쓴 에세이에 눈을 박고 중얼거렸다. 평소에 공부와 담을 쌓은 양 책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무늬만 한국학교 학생처럼 보이던 준혁이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책상에 좌정하고 에세이를 외우는데 만면에 긴장감이 흘렀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까 노심초사, 졸업해야겠다는 일념이 어찌나 강한지. 저토록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에 긴긴 세월 한국학교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자그마치 10여년을! 그러고 보니 졸업 에세이는 다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2세들의 실력이 농축된 진액이다. 졸업의 문턱, 경계에서 저마다 활짝 피워 올린 꽃이다!

“안녕하세요, 해바라기반 함초롬입니다.” “그래 초롬이가 쓴 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중국의 청자와 달리 고려청자는 은은하고 가벼운 곡선으로 만들어서 우아하다. 고려청자의 가치가 높은 것은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이 아주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 장인들은 문양을 넣을 때 상감이라는 기법을 써서 자유자재로 다른 청자들보다 화려한 그림들을 넣었다. 건조한 후에는 700에서 800도에 초벌구이를 하고 거의 투명하고 맑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 유약을 입혔다. 다시 1300도에서 재벌 구이…”

“아주 줄줄 외웠구나! 초롬이가 ‘고려청자’를 졸업논문 주제를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수업시간에 고려청자에 대해서 배웠고요, 또 한국에 갔을 때 국립 박물관에서 그걸 봤는데 멋있었어요.”



이렇듯 학생들은 졸업 에세이를 쓰기 위해 그동안 한국어를 배우면서 접한 한국의 역사와 인물, 전통문화 유산 중에서 자신이 가장 흥미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주제를 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주로 겨울 방학 동안 책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충분히 공부하고 글을 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실력이 한층 탄탄해진다.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에 조목조목 살을 붙여 자신만의 언어로 에세이를 쓰는, 이 시간이야말로 열매가 달큼하게 영그는 시간이리라.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는 시간이리라.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으니, 졸업반을 맡고 나면 나는 졸업논문을 위한 글감부터 물색한다. 학생들에게 건네줄 다양한 읽기 자료를 챙긴다는 말이다. 기실 교과서에 실린 한국 역사나 인물, 전통 문화유산에 관한 내용은 지극히 일부이니 교사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졸업 논문 쓰기부터 구두시험까지 그 지난한 과정이 조금 수월해진다. 자료가 풍성할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듯이, 교과서 내용과 연계하여 폭넓은 읽기 자료를 곁들여야 수업이 깊이 있고 덩달아 학생들의 글도 풍성해진다. 바로 일거양득!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글쓰기는 한결같이 어렵다. 독서를 통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이 내 안에 들어와 차고 넘치고, 농익어야 한편의 글이 미끄덩 탄생하는 것이다. ‘글은 자료와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라던 글쓰기 대가의 말이 맞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 또한, 글을 쓰는 것이 늘 버겁다. 스트레스다. 하물며 2세들은 오죽할까. 강산이 변할 만큼 긴 시간, 한국어와 한국의 전통문화 체험의 세례를 듬뿍 받았어도 졸업논문을 쓰는 일은, 더구나 한국의 역사와 인물, 전통과 문화유산에 대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선정해 이를 탐구하여 졸업논문을 쓰라니, 쉽고 빠르고 편한 것에 길든 2세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만 용케 잘 해냈다. 한여름 나무에서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5월의 신록보다 더 푸르른 이들은 치열해야 할 때는 한껏 치열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은 교장 선생님과 내 앞에서 제각각 머릿속에 담아온 내용을 단숨에 줄줄 쏟아냈다. 검은흙 속에서 줄줄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반짝이는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뿌듯한 기운이 내 안에 꽉 들어찼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