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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시카고에 부는 봄바람 새 바람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난 일부 한인들은 시카고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높은 세금과 인구 이탈로 인한 경기 침체의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마디씩 했다.

시카고살이가 고단한 이유를 몇 가지로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부패한 정치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고인 물이 썩어가듯 수 십 년 간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한 이들과 이를 방치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 시카고는 유난히 가족 간, 지인 간 권력 이동이 많은 듯하다. 아버지가 아들과 딸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경우나 고위직 자녀들이 크고 작은 자리 하나씩 차지하는 게 낯설지 않다. 한 번 감투를 꿰찬 이들은 웬만한 비리나 건강 문제가 아니고선 수십 년씩 별 탈 없이 자리를 지킨다. 능력과 업적의 평가를 떠나 내부자간 거래는 열성 교배일 확률이 높다.

모처럼 시카고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치 신인 로리 라이트풋이 2일 시장 결선투표서 승리, 첫 흑인 여성 시장이 됐다.



연방검사, 대형 로펌 파트너 출신인 라이트풋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 람 이매뉴얼 시장의 정치 생명에 결정적 타격을 안긴 흑인소년 라쿠안 맥도널드 16발 총격 피살 사태를 계기로 급부상했다.

당시 경찰위원회 의장으로 사건 재수사에 관여하며 경찰 개혁과 부패 정치 청산을 강조한 그는 이매뉴얼 시장을 겨냥해 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지고 지난 2월 치러진 통합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권력과 자금을 양손에 쥔 이매뉴얼 시장이 사건 은폐 시도 의혹에 휘말려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라이트풋이 이렇게까지 파죽지세로 내달리리라고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라이트풋의 당선은 '정치머신'으로 상징되는 시카고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시카고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인 토니 프렉윈클 쿡 카운티 의장, 시카고의 대표적 정치가문 출신으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빌 데일리 등 기성 정치인들을 외면했다.

구체제와의 과감한 단절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에 라이트풋이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기득권층의 특권 사수를 위한 연대와 반발은 거칠고 완강할 것이다. 어쩌면 시장실에 입성한 라이트풋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현실론을 내세워 타협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유권자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 금세 터져나올 수도 있다.

우린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시카고 남부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오바마는 시카고를 '표'와 '자금'이라는 수단으로 활용했을 뿐 총기폭력 실태, 인종•빈부에 따른 분리와 반목 해결을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외려 기득권 행사와 불필요한 간섭으로 부패를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56대 시카고 시장 라이트풋이 앞으로 어떤 발걸음을 내딛느냐에 따라 시카고의 미래는 달라진다. 시카고 시장은 시카고언은 물론 시카고 대도시권, 나아가 일리노이 주민 삶에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한인 커뮤니티도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라이트풋의 구체적 정책 방향과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향후 행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선거가 끝난 후 전국적으로 라이트풋의 '커밍아웃'과 인종•성별이 주목 받고 있으나, 구태에서 벗어나려는 유권자 움직임에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와 기대를 품는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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