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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사격, 등산에도 일가견이 있지요”

권성환 전 시카고 문인회장

권성환씨(사진)는 서울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조선호텔 건너편 서울시립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그 옆에 있던 미국공보관에서 영화도 많이 봤다. 선망의 대상이던 미국에 대한 꿈을 그때부터 간직하게 됐다. 당시 학생신문(전국판)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문 기사를 작성하고 국회를 출입하기도 했다.

그 무렵 미국의 한 신문사 주소를 찾아내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얼마 후 답장이 왔다. 하지만 어머님의 반대로 미국행은 무산됐다. 결국 군 제대 후 영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오클라호마 출신 장교 친구의 초청을 받고 1988년이 되어서야 시카고 땅을 밟았다. 40대 초반의 일이다.

고교 재학 시절이던 1962년 한 일간지에 기고한 문교정책 비판 글이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회상하는 그는 “대학시험에서 인문계와 실업계 학교의 차등적 교육 현실을 지적해 훗날 교과서 개편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실업계는 실습이 교과과정의 40%여서 대학 진학시 전 교과 과정을 끝내지도 못한 채 시험에 응시했기에 인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카고에 와서는 남부 상가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수시로 총기 사건이 발생, 사상자가 속출하던 시절이었다. 생명을 건 투쟁이었다.



그리던 중 버나드 쇼의 ‘한국판’ 비문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자책감이 들면서 문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9년 “바람의 도시”라는 작품으로 ‘서울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틈틈이 단편소설과 시를 한국 문학지에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뒤늦게 시작한 심리학 공부도 10여년의 노력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시카고상담연구원 소속으로 한인 가정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시카고엔 산이 없어 무료하다는 그는 대한산악연맹 정회원으로 활동할 정도였고 사격은 공기총 부문 충남 대표, 1973년 한국 라이플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그는 홈디포, 콜즈, 코스트코 등에 매직 쉐프 브랜드를 납품하는 CNA 인터내셔널에서 10여년째 재직 중이다.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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