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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누더기 옷 벗고 어머니 품에

내가 두 살 되던 해 어머니는 홀로 되셔 청상과부로 수절하셨다. 유년시절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동백기름 바른 새까만 머리에 올곧게 가르마를 탄, 눈이 부시게 하얀 소복 입은 모습이다. ‘떠난 뒤 슬픈 겨울은 갔습니다.(중략) 마른 입김을 날리며 줍는 소녀야. 뜰 아래 향기가 옷에 젖는다.’ -이기희 시 ‘백목련’ 중에서.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 당선된 이 시는 어머니께 바치는 나의 헌시다.

시인 김춘수선생님의 격려사를 듣고 세계적인 여류시인을 되기를 꿈꾸었다.

목련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돋아난다. 앙상한 가지에 잎의 흔적도 없이 피는 목련은 청승스럽다 못해 안쓰럽다. 수년전 새 집 지을 때 어머니 창가에 목련 한 그루 심었다. 목련은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랐는데 어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향기만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해마다 우리 가족의 안녕을 지켜주신다.

옛날 깊은 산골에서 한 어머니가 혼자 어린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어느날 품삯으로 받은 수수팥떡을 이고 오다가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힌다. 호랑이는 엄마 옷을 입고 오누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눈치 챈 남매는 안 잡혀먹히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하느님, 살려 주시려면 새 동아줄을 주시고, 죽이려면 헌 동아줄 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들은 새 동앗줄이 내려와 하늘로 올라가 온 세상을 비추는 해와 별이 되고, 호랑이는 헌 동앗줄이 끊어져 수수밭에 떨어져죽는다. 궁지에 몰리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내가 잡고 있는 내 인생의 동앗줄이 새 동앗줄인지 썩은 동앗줄인지, 아님 지푸라기인지 알지 못한다.



‘COVID-19’ 팬데믹으로 팔기로 계약한 집에 문제가 발생했다. 샌디에이고로 이사는 왔지만 빈 집을 방치할 수 없어 어렵사리 감행한 탈출을 일단 접고 본가로 귀향 하기로 결심했다. 아비의 분깃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 재산을 허비하고 돼지치기로 전락한 탕자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컫지 말고 품군으로 거둬 주실 것을 엎드려 호소하는데 아비는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연회를 베푼다. 비록 꿈을 접고 슬픈 모습으로 본가에 돌아간다 해도, 아! 그곳은 어머니와 함께 심은 백목련이 수백개 꽃망울 터트리고 뒷마당에는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내 집이다.

감염으로 수없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위기상항이라 비행기 예약하기까지 비장한 결심이 필요했다. “살려만 주세요. 이번에 목숨만 건져 주세요. 우리 세 식구 살아서 무사히 귀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삶이 가장 처참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 엎드려 통곡하면 새 동앗줄 내려주시는 분이 계신다.

아직 목숨줄 붙어있는, 살아있는 기쁨! 이제부턴 무슨 일 당해도 절대로 불평하지 않고 아무 것도 탐내지 않고, 욕심과 욕망 땅에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하기로 한다. 명예와 물질, 탐욕과 교만이 더덕더덕 붙은 때묻은 누더기 옷을 벗는다. 우리는 모두 탕자의 삶을 산다. 배신 때리고 등 돌리고 돌아서서 침 뱉고 썩은 동앗줄을 목에 감고 산다. 이국 땅에 묻힌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던 날은 바람 한점 없이 나무들은 조용히 흐느꼈다. 봄향기 뚝뚝 떨어지는 백목련 꺾어들고 어머님 묘소를 다녀오리라. 오월의 찬연한 나무들에 용서를 구하리라. 찬란한 초록의 싱그러움을 잊고 잠시 방황하며 가던 길 멈춰섰을 뿐이었다고.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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