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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가을이 지나가는 풍경

나뭇잎들이 물들어 간다. 샛노랗고 붉은, 핏빛 진홍색으로 가을 하늘을 물들인다. 이토록 아름다운 작별이 있을까. 찬란한 슬픔이 있을까. 활옷 입고 그대 얼굴 훔쳐보며 시집 오던 날, 뭉게구름이 하늘에서 돛단배처럼 둥둥 떠다녔다. 꿈에도 우리가 나뉘어서 다른 숙명의 길을 가리란 생각을 못했다. 영원히 함께 하리라 믿었다. 시간은 수없이 흘러갔는데 오래된 고물 벽시계는 여태 틱틱 소리 내며 돌아간다. 아직은 멈출 시간이 아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풍경 속에 망연히 서서 구멍난 가슴을 추스린다.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 살갑게 챙기고 시간에 떠밀려 놓친 사랑도 그리워하고, 아들 녀석 허벅지보다 단단하고 잘 뻗은 무우 골라 동치미도 담그고, 아! 립스틱 짙게 바른 빨간 고추는 잘 말려서 봉씨 아저씨와 나눠 먹어야지. 올 봄에 이름 모를 각종 꽃씨 든 봉투 사서 어머니 방 앞에 뿌렸더니 세상에! 이름 모를 꽃 속에 진분홍빛 코스모스가 폈다. 가는 목이 너무 애처로와 아침마다 목이 부러졌나 숫자를 센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사람 발길 끊어진, 마스크 끼고 찿아올 친구도 없는데 도토리가 떨어지며 패티오 문을 두드린다. 잠시 슬퍼하고 조금 아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1861년 아침 8시 30분, 창문 너머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레 미제라불’을 끝냈다네. (중략) 이제는 죽어도 좋아.” 1845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레 미제라불’을 탈고한 위고는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고 고백한다. 휴머니즘과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이자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기상천외한 인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방대한 문학 작품을 썬 작가이자 재능 넘치는 데생 화가이며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수만은 연인들과 염문을 뿌렸다. 자작 작위를 받지만 여배우 레오니 당트와의 간통 혐의로 수감돼 칩거한 동안 불후의 명작 레 미제레불 집필에 몰두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문단은 스탕달, 발자크, 뒤마, 보들레르, 졸라, 베른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대표작을 간행하며 각축을 벌렸지만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서 빅토르 위고만큼 생전에 큰 영예와 영향력을 누린 작가는 많지 않다. 그는 역사의 현장 속에 과감하게 참여해 정치적 성향을 바꾸며 성공과 좌절의 정치가도를 달렸지만 인도주의적인 신념을 충실하게 지키고 ‘권력’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낭만주의 거장’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는다.



위고의 80세 생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 됐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한다.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교회의 추도식은 거부한다. 영혼으로부터의 기도를 요구한다. 신을 믿는다.”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1885년 폐렴으로 자리에 누운 뒤 나흘만에 “검은 빛이 보인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 그날 밤 파리에는 그의 생애와 죽음을 애도 하듯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위대한 거장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유해는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모든 화려함과 아름다움, 기막힌 사랑과 불타는 정열도 때가 되면 낙엽으로 혹은 재가 되어 흩어진다. 가을이 지나가는 풍경 속에 홀로 서서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남은 시간을 세듯, 다시 오는 계절을 기다리며 옷깃을 여민다.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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