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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시간은 쓰기 위해서 또는 약속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면 어떨까. 우리가 생활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시간은 한 번 흘러가 버리면 돌이킬 수 없고, 흘러가는 발걸음 또한 빛과 같이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그것을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그래서 시간을 금이라 한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만 간다. 쉬어 갈 줄도, 정지할 줄도 모른다. 우리는 끝없이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가치를, 그 중요성을 실생활 속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시간을 동반하는 약속 따위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한국인들은 유별나게 시간관념이 희박한 민족이다. ‘코리언 타임’이란 것도 이런 국민의식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20대 대통령 카필드가 대학에 다닐 때 있었던 일화다. 그와 동급생인 어떤 학생이 수학 성적이 뛰어나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학생과 같은 기숙사에 있는 카필드가 어느 날 취침 시간이 되어 자려고 할 때, 문득 그 친구의 방을 보게 되었다. 자기보다 십분 후에야 방의 불이 꺼진다는 것을 알고, ‘아, 이것이다. 저 친구는 나보다 십분 더 공부를 하는구나.’ 카필드는 이 친구의 비결을 간파하고부터 자기도 그 십분에 수학을 한 문제씩 더 풀기로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그 결과 그는 수학에서도 그 친구를 이기고 일등으로 졸업을 하였던 것이다.

먼 훗날 그는 대통령이 되어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일이 웃어넘길 학창 시절의 야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고 십 분을 더 이용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모든 것을 성공시키는 비결이 되었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이것은 십 분이란 숫자가 문제가 아니고 단 일 분이라도 시간을 유효하게 그리고 아껴 쓰는 사람, 자기 의지를 끝까지 실천하는 성실한 사람, 다시 말해서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예화다. 나는 그의 말 가운데 ‘십 분을 이용한다는 이것이 모든 것을 성공시키는 비결이 되었다’는 구절 속에 숨겨져 있는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라는 의미를 발견하고 상당히 고무적인 암시를 받았다.

카필드가 라이벌인 친구보다 십 분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 모든 것을 성공시키는 비결이 된 것과 같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치유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작은 실천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코리언 타임‘이란 문화병을 하루 빨리 몰아내는 것이 그 한 방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무 과장된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코리언 타임 관행‘을 청산하지 않고는 실종된 도덕을 바로 세울 수 없고, 붕괴된 권위와 질서의식을 회복할 수 없고, 만연된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관념의 희박, 약속 따위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 등에서 생성된 ’코리언 타임‘이란 문화병이 한국인의 마음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나고 있는 한, 우리 교육의 목표인 인간성 회복도, 우리 국가의 목표인 부정부패 척결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든든한 나라 건설이 요란한 구호나 추상 같은 적폐청산만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방예의지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한국, 그 아름다운 강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왜 ‘어글리 코리안’으로 질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의 영혼을 괴롭히는 죄는 살인죄보다 더 크다’고 했다. 생명을 단절시키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마는, 영혼을 괴롭히는 행위가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죄라는 주장에 공감이 가는 것은 왜일까. 약속된 시간에 와야 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사람은 상당 시간 동안 영혼의 괴롭힘을 당하는 셈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상대방을 걱정을 하며, 불안과 초조, 긴장과 분노의 감정을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삶의 절반은 만남의 선상에 놓여 있는 데도 우리는 자기와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시간 약속 따위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은 만남의 과정이다. 우리네 삶이 ‘코리언 타임’으로 인해 시나브로 영혼의 괴롭힘을 당한다면 무슨 일이 잘 되겠는가. 약속을 해놓고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정해진 장소에 나오지 않는 가슴에 철판을 깐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통 받았는가. 교육자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제자들에게 ‘칸트의 산책’ ‘카필드의 십분’이란 제목으로 정신훈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외부와 싸워야 하고 또 내부와 싸워야 한다. 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둘 다 어렵지만 자신과 싸워 이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카필드가 대통령이 된 것도 결국은 ‘십 분 더 일찍, 더 늦게’의 정신을 유지케 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이리라.

그 동안 나는 적어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다. 이런 간단한 약속 같은 작은 실천도 제대로 못하면서 부끄럽게도 연말만 되면 새해부터 운동을 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살아오면서 약속을 소홀히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치가나 행정가나 교육자나 문인이나 모두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등의 작은 의식 개혁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서지 않겠는가. 이 즈음에서 시인이자 수필가인 K 선생님이 자신의 생활신조라면서 독일어로 내게 들여 준 약속에 관한 격언 한 마디가 가슴 언저리에 내려앉는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Pacta sunt servanda)

프로필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수필가
대한민국 수필학 대한명인(제15-436호)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사편찬위원장
국제PEN클럽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장
한국바다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수상
2016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대상 수상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외 14권
헌)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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