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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낭만 품은 지중해의 진주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2/01 16:22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타오르미나
도시로 이어지는 ‘메시나 문’ 장관
커피·맥주 안성맞춤인 카페 즐비

그리스 극장에서는 에트나 산이 한 눈에 보인다

그리스 극장에서는 에트나 산이 한 눈에 보인다

타오르미나의 이솔라 벨라 섬(오른쪽)

타오르미나의 이솔라 벨라 섬(오른쪽)

두 번째 찾은 타오르미나는 태양 아래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중세 거리, 중세 건물, 미로의 골목길, 그리스 극장과 예쁜 이솔라 벨라 섬까지 품고 있는 도시. 타오르미나가 아름답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등 정복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정복자들은 또 다른 정복자들에게 쫒겨났다. 전세계 유명인들도 타오르미나의 비경 소리를 듣고 비켜갈 수 없다. 괴테, 바그너, 니체, D. H. 로렌스, 오스카 와일드, 존 스타인벡, 캐리 그란트,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 그레고리 펙 등이 이곳을 찾았다.

타오르미나의 역사는 기원전 734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 섬에 도착하기 전에 낙소스 사람들이 타오르미나를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세운 도시 이름은 ‘타우로메니온’이다. 후에 타오르미나로 바뀌었다. 도시로 들어 가는 관문은 움베르토 1세 거리가 시작되는 ‘메시나 문’이다. 양쪽으로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밀집해 있고 골목길은 ‘카타니아 문’까지 이어진다. 15분 정도밖에 안되는 길이지만 골목길이 너무 예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작은 골목길 계단에도 꽃나무가 있는 큰 항아리가 보여 아름답다.

레몬, 과일, 올리브 오일, 파스타,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은 보기 좋은 상품들로 가득 차있고, 아랍 정복을 암시하듯 무어인의 머리 마졸리카(도자기)와 각종 그릇을 파는 상점도 보인다. 비수기에도 거리는 활기가 넘치는데 성수기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4월 9일 광장’이 나왔다. 흑백의 대리석이 깔려있는 이곳은 타오르미나의 거실로 불린다. 1860년 4월9일은 가리발디 장군이 시칠리아 마살라 섬에 도착했다고 알려지며 지어진 이름이다. 사실 5월9일에 도착했지만, 시민들은 첫 소식이 전해진 4월9일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이오니아 해를 바라 보며 상념에 젖는다. 중앙에 성 아고스티노 성당은 현재 도서관으로 활용중이다. 옆으로 고급 카페가 있어 커피 한 잔 또는 맥주 한 잔 마시기에 좋다. 13세기에 처음 지어진 대성당은 ‘대성당 광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시라쿠사에서 가져온 단단한 석재로 건축된 성당은 성처럼 견고해 보인다. 광장 중앙에는 분수와 계단이 있다. 나이든 시니어들이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스 극장은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극장이다. 당시 이곳에서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공연했다. 모두 2,300년 전에 활동하던 그리스의 비극 시인 또는 희극 시인들이다. 5,400명이 앉을 수 있는 극장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은 팝, 록, 클래식, 오페라, 영화 축제 등 다양하다. 2018년에도 몇 번의 공연이 있는데 그 중에는 마리아 칼라스 추모 공연(9월16일)도 포함돼 있다. 극장에 앉으면 멀리 에트나 산이 보인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경관이다.

1844년 찰스 디킨스는 이솔라 벨라 섬을 방문하고 ‘이솔라 벨라는 환상적이어서 더욱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이솔라 벨라는 예쁜 섬이라는 뜻이다. 1806년 스페인의 페르디난트 1세는 섬을 타오르미나 시에 기증한다. 1890년에는 ‘프로렌스 트리벨리언’이란 여인이 주인이 됐다. 당시 그녀가 지불한 액수는 5,700리라였다. 지금 시세로는 2만 4천달러 정도다. 프로렌스는 원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가까운 친척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자 여왕은 그녀를 데려와 식물학과 조류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프로렌스는 금단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상대는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이자 미래의 왕이 될 에드워드 7세였다. 이미 기혼자였던 에드워드 7세는 프로렌스를 비롯 55명이 넘는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여인들 중에는 귀족여인, 여배우, 창녀, 가수 등 다양했는데 그 중에는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까지 포함돼 있다.

결국 여왕은 프로렌스를 궁에서 쫒겨내고 말았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2년동안 세계여행을 한 후 타오르미나에 정착한다. 그리고 시장이자 수의사였던 살바토레 카치올라 박사를 남편으로 맞아 들였다. 그리고는 이곳에 작은 건물을 짓고 희귀한 관목과 잔디를 심어 식물원처럼 섬을 꾸몄다. 그러자 다양하고 희귀한 도마뱀들이 섬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녀는 각나라의 왕과 왕비, 오스카 와일드 등 문학적 거인들을 초청하여 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후에는 에드워드 7세도 이곳에 초청됐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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