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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해도 '따스함' 꾹꾹 눌러담은 워킹맘의 밥 한 그릇

알리소 베이호 워킹맘 스테이시 강의 김치찜 이야기

콩나물 수북이 넣어 아삭 매콤한 김치찜
뿌리채소와 곤약조림, 햄프씨드 넣은 감자채전


길은 가깝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곳을 향하는 발길엔 언제나 설레는 마음이 깃든다. 미국처럼 넓은 땅에 살면서 한 곳에만 사는 건 왠지 '누림'을 방치하며 사는 것 같다. 먼 곳이 아니더라도 잠시 짬을 내어 가까이에 있는 낯선 동네만 돌아보아도 작은 투어는 끝이 없고, 어느새 '쉼'이 곁으로 온다.

맛있는 김치찜을 맛보러 가는 길은 '알리소 베이호'(Aliso Viejo). 어바인에서 15분 정도 샌디에이고 쪽으로 내려가면 푸른 숲으로 가득한 작은 도시가 나왔다.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의 이름이 '캐년'인 것처럼 산 중턱의 예쁜 집들은 산을 바라보며 초록 나무들이 정원에 드리웠다.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하이톤의 안주인 목소리가 경쾌하게 손님을 반겼다. "먼길 오셨는데 음식이 시원찮으면 어떡하나… 손이 부끄럽지만 맛있게 여겨주세요!"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성격의 스테이시 강씨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급하게 들어왔다. 경동 나비엔에 근무하는 강씨는 온수매트를 총괄하는 매니저로 동분서주하면서도 사춘기 자녀들도 살뜰하게 챙기는 열혈맘이다. 그렇게 바쁜 데도 가족에게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는 정성이 대단하다. 특히 식구들이 한식만을 고집해 집밥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는 푸근한 주부의 넋두리도 즐거웠다. "제가 바빠서 정신없이 준비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하하" 달그락거리는 냄비 소리, 쿵하는 도마 소리 … 워킹맘의 일상을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팔 걷어붙이고 도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호탕한 웃음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손맛 그대로 '콩나물김치찜'



안주인은 큰 냄비를 꺼내 불 위에 올리고, 뚝딱뚝딱 고기를 썰고 지글지글 볶는 등의 조리 과정을 손 빠르게 해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늘 해주시던 '콩나물김치찜'. 일반적인 김치찌개는 집에서 먹어본 적이 없고 언제나 콩나물을 듬뿍 얹어 아삭하고 매콤하게 즐겼던 콩나물김치찜이 이 집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짧게 손질된 찌개용 돼지갈비를 쑹덩쑹덩 잘라 큰 냄비에 생강, 마늘, 맛술과 함께 넣고 지글지글 볶는다. 여기에 김치와 굵게 채를 썬 양파를 넣고 더 볶는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김칫국물 두세 국자와 물을 아주 자작하게 부어 끓인다. 고기가 익으면 한 입 크기로 썬 소시지를 넣고 깨끗하게 손질한 콩나물을 푸짐하게 넣은 다음 뚜껑을 덮어 익힌다. 콩나물이 아삭하게 익으면 골고루 섞어서 우묵한 그릇에 담아낸다.

김치찜이 익어갈 때쯤 어른 한 분이 쓱 들어오셨다. 익숙하게 부엌에 들어오셔서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시길래 친정 어머니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강씨의 고등학교 친구의 어머니. 강씨는 대학교 때까지 새크라멘토에서 살다가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혼자 한국으로 건너갔다 한다.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다 키우다가 몇 년 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스테이시 강씨는 또다시 모험을 감행했다. 살던 곳이 아닌 연고가 전혀 없는 낯선 곳에 터전을 잡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학창시절 가장 친했던 동창이 바로 한 동네에 살고 있어서 지금껏 가족처럼 지낸다고 한다.

담백한 밥반찬 '뿌리채소조림'

친구의 어머니는 요리 도사님. 암환자를 위한 채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시고 요리책도 내셨다. 역시 짧은 시간에 연근, 우엉, 당근 등의 뿌리 채소들의 껍질을 벗기고 얇게 어슷하게 썰어놓는다. 여기에 함께 넣을 곤약은 직사각형으로 잘라 길이로 칼집을 낸 다음 꼬아서 타래 모양을 만든다. 표고버섯도 손질해서 열십자로 칼집을 낸다. 냄비에 곤약과 표고버섯을 뺀 나머지 재료들을 담고 자작하게 물을 붓고 다시마 한 조각을 넣어 5분 정도 익힌 후 다시마는 건져내고 쯔유와 매실, 맛술 등을 넣어 조린다. 어느 정도 국물이 잦아들면 곤약과 표고버섯을 넣어 살짝 조려낸다. 심심하면서도 달큼한 뿌리채소조림이 완성된다. 며칠 두고 먹는 밥반찬으로도 좋다. 곤약의 식감도 쫄깃하고 칼로리가 낮아 건강식으로 잘 맞는다.

햄프씨드 넣은 '감자채부침'

바삭하면서도 감자의 아삭한 식감을 살려 만든 감자전도 일품이었다. 보통 강판에 갈아서 전으로 부치는데, 이번에 맛본 감자전은 얇게 채를 썰어 그대로 부쳐냈다. 감자, 양파, 파프리카를 각각 1개씩 준비해서 곱게 채를 썬다.

보울에 재료들을 담고 밀가루 2큰술, 감자전분 2큰술, 햄프씨드 2큰술, 소금 약간을 넣어 골고루 섞는다. 여기에 물 1/3 컵 정도를 조금씩 부어가며 농도를 되직하게 맞춘다.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넓게 펴 가며 노릇하게 굽는다. 모양 있게 썰어 접시에 가지런히 담는다. 햄프씨드가 들어가서 맛도 고소하고 영양도 배가된다.

볕 좋고 바람 좋은 마당에 앉아 구수한 집밥을 맛보고 있을 때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새차게 흔들며 안겼다.

이름은 '파지'. 긍정적인 뜻의 파지티브에서 따왔다해서 또 한 번 웃었다. 마음 아프게도 버려진 강아지였다고 한다.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워킹맘의 부엌이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푸근한 한식을 가족이 반기며, 옆집 동창의 어머니가 손수 음식 장만해 주시는 인심이 고맙고, 친어머니처럼 허물없는 안주인의 따뜻함이 감사하고, 버려졌던 파지가 행복해져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잠깐 만났을지라도, 잠깐 그의 부엌을 들여다봤더라도, 그런 장면이 설사 일부라 하더라도, 오늘 만난 행복은 참 고맙고 다행이다.세상엔 겉모습조차도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글·사진 = 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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