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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존엄하다는 말

40대 이상이라면 1980년대 일본 드라마 '오싱'을 기억하는 분이 꽤 있을 것이다.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1925년생으로 올해 93세다. 하시다 여사는 재작년 '나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글을 잡지에 기고해 일본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자신이 그렇게 결심한 이유와 죽음에 대한 생각, 독자 편지에 대한 답을 엮어 책을 냈다. 이 책이 최근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됐다.

뮤지션 요조씨와 함께 진행하는 독서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다루며 제작진들과 함께 읽었다. 우리 독서 팟캐스트에서는 요조씨와 나, 다른 제작진 네 사람이 책을 꼼꼼히 읽고 온라인으로 독서토론을 한 뒤 거기서 오간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쓴다. 그런데 이번 책처럼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각자 다른 생각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의사나 철학자가 아니라 당사자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의 박력이 있었다. 이미 하시다는 도우미들에게 자기 심장이 멈추면 응급차를 부르지 말라고 지시한 상태다. 자기 무덤도 미리 만들어 놨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다. 치매가 오기 전에 스위스에 가서 적극적 안락사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살은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책 주제를 떠나 작가 자신이 무척 논쟁적인 인물이다. 자기 주변을 통제하고 싶다는 의지의 정도가 준엄함을 넘어 위화감을 줄 정도다. 지금도 일주일에 사흘씩 팔굽혀펴기를 하고, 매일 고기를 200그램씩 먹는단다. 30년 전 남편이 폐암으로 사망할 때에는 끝내 남편에게 '당신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마지막까지 밝고 활기차게 지내다 떠났으므로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시다에게 존엄성이란 곧 자존심과 통제력을 의미했다. 우리 팟캐스트 멤버 중에는 그와 달리, 어찌 됐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존엄하다고 본 이도 있었다. 설사 치매에 걸린들 어떠랴. 다음 주에 갑자기 기적의 치매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내게 있어 인간의 존엄함이란, 의미와 기품을 말하는 듯했다. 어느 정도 자존심이나 통제력과 겹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상처투성이인 승리나 절대적인 결정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상실, 하락, 불가사의는 인생에서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다만 그 순간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존엄성은 그런 품위와 관련이 있다.

한 단어로 줄이라면 '우아함'이라고 표현하겠다. 인간은 존엄하다. 내게 있어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우아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우아해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인간다운 사회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해 우아함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때 복지수당 액수만큼이나 그 돈을 전달하는 방식도 신경 써야 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존엄한 사회'다.

안락사, 존엄사에 대해 고민하다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에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과정이 신기했다.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경로였을까? 우리가 이뤄야 하는 존엄한 사회는 '민족의 영광' 같은 개념이 아니라 개개인의 존엄한 삶을 바탕에 둬야 할 테니.

한편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문턱에 이른 이제, 우리가 함께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존엄함이란 무엇인가. 개중에는 고대인들처럼 '적이 내 발아래 무릎 꿇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존엄한 목표라고 믿는 이도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소리로 통곡하는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글쎄,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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