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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내세운다고 손님 드나, 고개 떨군 사회파 영화

나원정 기자
나원정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8/02/23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8/02/22 18:46

'1987' 이후 달라진 흥행 코드

영화 '염력'의 한 장면.

영화 '염력'의 한 장면.

130억 들인 코미디 '염력' 참패
용산참사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시대정신 못 읽은 '흥부'도 부진
권력 비판하지만 재미는 떨어져


총제작비 130억원의 대작 '염력'이 관객 98만 명 선에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3년 전 '부산행'으로 1156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다. 지난달 31일 1000개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작품성 논란에 휩싸이며 100만 관객을 넘지 못했다. 손익분기점 370만 명에 턱없이 못 미치는 성적이다. 소시민 수퍼 히어로란 소재만 보고 통쾌한 선악 구도와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아직 아물지 않은 용산참사의 비극을 애매하게 소환한 블랙 코미디에 당혹감을 표했다.

'염력'의 흥행세가 일찌감치 꺾이면서 설 연휴 한국영화는 코믹 사극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 강동원 주연 범죄 영화 '골든슬럼버', 조선시대 고전을 재해석한 '흥부'가 3파전을 벌였다. 하지만 승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랙 팬서'였다. 나흘간 영화관 수입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설 연휴, 부패 검사를 장르적으로 풍자하며 공감대를 끌어낸 '더 킹'이 남북한 형사의 협업을 그린 '공조'와 더불어 한국영화 매출액 점유율을 약 76%까지 끌어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변호인' '베테랑' '터널' '내부자들' 등 최근 5, 6년간 극장가에 두드러졌던 사회파 영화 흥행 공식이 변화하고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에서 현실의 출구를 찾았던 지난 10년과 촛불정국을 맛본 이후 요구되는 영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장미대선 직전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을 기점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영화 '흥부'의 한 장면.

영화 '흥부'의 한 장면.

민초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강조한 '흥부'는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대통령이 바뀔 줄 상상도 못 했던 시절 기획된 이야기들이 정권교체 후 개봉하다 보니 공감대가 떨어진다"면서 "관객을 강박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대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가 호소하는 정의가 어떤 것인지도 중요해졌다. '염력'의 경우 "왜 초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가 남성, 아버지이고 여성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그려지는지"(허남웅 영화평론가) 의문이 제기됐다. '염력'은 딸이 어릴 적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우연히 초능력을 얻어 딸을 포함, 재개발 철거에 맞서는 상인들을 돕게 되는 전개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맹목으로 아버지의 귀환을 반기는 서사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또 "상업오락영화인 '염력'이 용산참사와 같이 무거운 한국 사회 문제를 소모적으로 활용한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영화적 완성도와 방법론도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달 개봉한 홍기선 감독의 유작 '1급기밀'은 국방부 방위산업 비리를 다뤘지만 실화를 거칠게 옮기며 관객 수 21만에 그쳤다. 2009년 홍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관객 수는 53만에 그쳤어도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2016년 작업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오는 28일 개봉하는 범죄 코미디 '게이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검사와 좀도둑, 청년백수가 우연히 청와대 관련 비자금을 털게 된다는 내용으로 국정농단 시국을 버무려냈다. 시사회에 선보인 영화는 사건 개연성이 부족한 데다 최순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도 피상적으로 등장할 뿐 카타르시스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소재에 의존한 나머지 기본적인 감정이입조차 힘든 영화들이 적지 않다"면서 "요즘은 관객들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SNS(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개봉 하루 이틀이면 입소문이 퍼진다. 완성도 없이 정의감에만 호소해선 흥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영화계에선 지난해와 올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와 '1987'이 각각 1218만, 722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의미 있는 시대 고증과 스타 파워, 이른바 '광장'이 승리하는 결말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 흥행사례로 보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열기의 중심에 있었던 50대 이상 관객의 강력한 지지도 큰 몫을 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민주화 운동이 거셌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문화에 감성주의, X세대가 나왔던 것처럼 '1987'의 흥행을 마지막으로 이젠 정의를 좇는 서사를 벗어나 가볍게 즐길만한 영화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듯 보인다"고 했다.

올해 개봉을 기다리는 한국영화 중엔 사회적 메시지를 내세워도 장르적 변주를 시도한 작품이 많아, 극장가 분위기가 다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 신작 '뺑반'은 형사물이되, 카체이싱 액션을 표방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과 배우 하정우가 5년 만에 다시 만난 'PMC'는 판문점을 배경으로 남북한 이슈를 다루지만 밀폐된 지하 벙커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전투 액션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과함께2'도 있다. 폐지 줍는 노인과 어린 손자의 생활고가 담긴 얘기를 한국 전통 신화에 기반한 판타지 장르로 풀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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