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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약 지킬 135조원 마련할 대책 있나

예산절감ㆍ지하경제 양성화만으론 한계
경제성장 회복만이 세수 늘리는 지름길

이제 나흘 후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아직 정부조직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조각 대상 각료들의 청문 절차가 언제 끝날지 불투명하지만 나흘 후엔 어찌됐든 가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새 정부가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영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총리와 장관 인선의 지연보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새 정부가 과연 어떤 정책을 어떻게 펼치겠다는 건지 여전히 잘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정책과제를 (조용히) 준비해 왔다. 18일엔 중점적으로 추진할 공약을 추리고 이행 계획을 마련해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고했고, 조만간 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간간이 흘러나온 인수위의 공약 실천 방안을 보면 핵심적인 내용이 빠졌거나 부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이 아직도 확실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재원 마련 방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앞으로 5년간 공약 이행에 필요한 추가 자금을 134조5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이를 예산 절감과 세제 개편, 복지행정 개혁 등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증세나 적자재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추가 소요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인수위는 이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에 종합적인 재원조달 대책을 마련해 1월 말까지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대선 캠프에서 적당히 짜놓은 재원 마련 구상이 도무지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산을 아껴 쓰는데도 한도가 있고, 비과세ㆍ감면의 축소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세출 예산을 1년에 1조~2조원 줄이기도 벅찬 게 사실이고, 중소기업과 농어민ㆍ서민들이 주 대상인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손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판에 매년 27조원씩의 추가 재원을 어디서 짜낸단 말인가. 기획재정부는 아직 재원조달 대책을 만들지 못했다.

인수위는 대안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들고 나왔다. 음성적으로 줄줄이 새는 세금 탈루액을 이 잡듯이 뒤지면 연간 6조원 이상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지하경제라는 걸 발본색원(拔本塞源)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하경제라는 게 뭔가. 대부분 소상공인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이 세금계산서 없이 현금으로 거래하는 경제활동이 대부분이다. 물론 아무리 영세해도 세무신고를 제대로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세금을 제대로 다 내고선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에 현금거래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세무공무원을 총동원해 이들을 때려잡는다고 과연 세금이 얼마나 더 걷힐까. 세금을 내지 않고 겨우 수지가 맞는다면 세금을 제대로 거두기 시작하는 순간 그런 경제활동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제활동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말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생각이라면 이들이 세금을 내고도 먹고 살만하게 사업 규모를 늘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억지로 지하경제를 때려잡을 일이 아닌 것이다.

세정을 강화해 세수를 늘린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세정 강화란 세무조사를 더 많이 더 엄격하게 한다는 얘기다. 이것도 탈세를 뿌리뽑아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할 만한 일이지만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웬만큼 세무행정을 아는 사람들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세정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세정 강화는 분명히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탈세를 묵인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수 때문에 세무조사를 더 세게 해서 세금을 더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수는 세율 인상이나 세정 강화보다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때 확실하게 늘어난다. 세율을 올리거나 세정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 세금을 더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절세 동기를 키워 중장기적으론 세수를 도로 줄이고 만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의 세수 추이를 보면 그런 사정을 금방 알 수 있다. 땅값ㆍ집값이 높을 때는 세수도 많았지만 땅값이 떨어지면서 세수 또한 확 줄었다. 경제가 나빠지면 제아무리 세율을 올리고 세정을 강화해도 물릴 세금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 2%대로 성장률이 추락한 지난해 국세 징수액은 당초 계획보다 2조8000억원이나 줄었다. 올해는 4% 정도 성장할 걸로 예상하고 세입예산을 짰지만 실제 성장률은 그보다 훨씬 낮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도 세수가 늘어나기는커녕 예산에 훨씬 못 미칠 공산이 큰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여전히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북핵 문제로 국방비 증액 등 돌발적인 재정소요가 나타난 만큼)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대책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시한다고 없는 재원이 하늘에서 떨어지진 않는다.

물론 유능한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새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재원 대책을 만들어낼 것이다. 설사 실현될 가망이 전혀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 재원 대책을 믿고 공약 이행을 강행하다간 나라 재정이 거덜날 수밖에 없다.


김종수 한국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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