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비운의 민들레

나는 어릴 때 담장 옆에나 길가에 핀 민들레 꽃을 보면 따서 보기도 하고 민들레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여자친구 에게 끼워주기도 했습니다. 꽃이 지면 하얀 털모자 모양의 털 잎을 후하고 불면 몇 백 개나 되는 털 잎이 하늘로 멀리 멀리 날라 가기도 했습니다. 민들래 꽃은 화려한 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꽃도 아닙니다. 화원이나 화단에 피는 꽃이 아니고 담장 옆이나 길가에 들에 피고 가끔 남의 집 잔디밭에 침범했다가 참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들레 꽃은 노란 꽃이 복스럽습니다 생명이 길지도 않아서 일주일이 채 못 가서 머리는 하얗게 세고 머리털은 바람에 날라가 버립니다 어느 식물이나 번식력이 강하지만 민들레도 번식력이 강합니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까지 피는데 어디 던지 가릴 것이 없습니다. 오래 전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행을 하다가 민들레 꽃이 가득한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 넓은 들에 민들레 꽃이 가득히 피어 온 땅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마치도 반 고호의 해바라기 들판의 축소판처럼 노란 들판이 환상적이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많은 민들레 꽃으로 채워진 들판을 본일이 없었고 들판은 금관을 쓴 꽃들로 찬란했습니다. 그런데 민들레 꽃 하나하나는 그리 아름다운 꽃이 아닙니다. 장미나 백합이나 오키드처럼 아름답고 우아하지는 못하지만 노랗게 활짝 핀 꽃은 복스럽습니다. 그러나 민들레 꽃은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는 한약으로 쓰이고 말려서 차를 다려먹고 나물을 무쳐 먹습니다 한약에서는 이뇨제로 고혈압과 성인병의 치료에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들레는 잡초 취급을 받습니다 잡초 중에서도 아주 학대를 받는 잡초입니다. 잔디밭에 민들레가 보이면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 도련님이 큰일이나 난 듯이 싹 뽑아버리고는 아주 씨를 말리려 독약을 뿌립니다.

요새 난민으로 여기저기서 괄시를 받고 있는 조선족과 무슬림 난민들의 뉴스를 보며 민들레 꽃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억센 생명력과 천대받는 운명이 비슷하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 길을 걷다 길가에 핀 민들레 꽃을 보았습니다 길옆의 버려진 땅에 잡풀들과 섞여 피어있는 민들레 꽃. 잎이 약간 거칠게 보이지만 노란 꽃은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도 오래 전 무의촌 진료를 갔을 때 우리를 보며 수줍으면서도 반가운 인사를 보내던 시골의 처녀처럼… 별로 바쁜 일이 없는 나는 허리를 굽혀 민들레 꽃을 만져 보았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연약한 목에 얹혀있는 금관 같은 꽃… 나는 애처러워 꺾지도 못하고 손으로 어루만져주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좀 있으면 잔디를 깎는 사람이 무참하게 기계로 쳐버리겠지요. 무의촌에서 나를 보며 웃었던 수집은 처녀… 도시의 처녀들에 비하면 예쁘지는 않지만 얼핏 보기에 복스럽고 순진하고 건강하던 소녀… 민들레처럼 천대받지 않고 귀하게 대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용해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