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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거울 신경세포

TV 화면에서 한 사람이 피자를 먹는 장면을 보는 순간 당신 자신이 실제로 피자를 먹을 때와 똑같은 변화가 당신 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목격하는 순간 당신의 뇌는 저 자신이 그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1980년대 초에 리졸라티(Rizzolatti: 1937~)를 위시로 한 이탈리아의 신경생리학자들은 이처럼 남이 하는 행동을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여기는 뇌신경세포를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라 불렀다. 그들이 원숭이의 뇌를 연구하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이 신기한 현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조류(鳥類)와 다른 동물에도 있다고 추정된다.

모방, 언어습득,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 등등에 이 거울 신경세포가 큰 역할을 한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성급하게 말해서, 행동하는 사람과 관찰하는 사람의 뇌에서 똑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객체(客體)와 주체(主體)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진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시(詩)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신과 의사출신인 영국의 정치가 데이비드 오웬(David Owen: 1938~)이 2009년에 신경과 저널 'Brain'에 기고한 논문, 'Hubris syndrome: An acquired personality disorder?(자만심 증후군: 후천적 성격장애?)'를 읽었다. 그는 과거 100년에 걸친 미국 대통령과 영국의 국무총리 중에서 큰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들을 집중 조명했다.



자만심 또는 오만으로 번역되는 'hubris'은 아주 어려운 단어다. 한국에서는 이 말을 그냥 '휴브리스'라 있는 그대로 옮겨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언론에서는 기업의 총수를 비판하거나 권력자의 '갑질'을 지적할 때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휴브리스'의 본뜻은 희랍어로 '신(神)을 향한 건방진' 행동을 뜻했다. 신을 섬기던 천사에서 악마로 타락한 사탄, 또는 밀랍을 발라 만든 날개를 펄럭이며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건방을 떨면서 태양 가까이 높은 하늘을 훨훨 날아가다가 급기야 밀랍이 녹아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신화 따위가 좋은 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말을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못되게 구는 행동을 뜻할 때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hubris'는 또 워낙 '집에서 키우는 암퇘지와 야생 멧돼지 사이에 태어난 잡종 돼지'를 뜻했던 'hybrid(잡종)'와 그 어원이 같다.

'자만심 증후군'의 특징은 부풀어진 자존심, 남을 향한 경멸감, 현실성 상실, 충동 억제 장애, 판단 장애, 무능력 따위로 열거된다. 핵심 증상으로는 남과의 공감대 결핍이 으뜸으로 손꼽힌다. 이 질환은 거울 신경세포의 부재 현상이면서 심지어 두뇌 손상 증상과 다르지 않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유전적 질환이 아닌 후천적 획득형질로 파악되는 이 난처한 상태는 권력이 지속되는 동안 맹위를 떨치다가 권력의 임기가 끝난 후에는 증상이 없어진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지독한 자만심에 얼이 빠져서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놓이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가깝게는 우리의 근대사,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기록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라.

그런 권력자 측근에 유력한 조언자가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윈스턴 처칠 곁에는 아내 클레멘틴(Clementine)이 있었고 프랭크 루즈벨트 대통령에게는 강직한 언론인 루이스 하우이(Louis Howe)가 있었다. 그들은 위험천만한 자만심 증후군에 매달리는 국가 원수들에게 겸손과 측은지심을 고취시켜 주었다고 한다. 여러 국가간에 일어나는 심각한 갈등의 도가니에 빠진 당신과 내 한국과 미국 대통령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http://blog.daum.net/stickpoet


서량 / 시인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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