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11월이 고맙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방문으로 기침.두통.몸살로 고생하다가 며칠 만에 바깥 세상을 보니 10월은 가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어 있었다. 아직 푸른 색이 남아있던 나무들이 모두 노랑과 붉은 단풍 색으로 바뀌어 거리와 숲을 장식하고 있다. 갑자기 산다는 것의 색깔도 갈색으로 익어가며 그 풍경이 꽤 고급스러워 진 것 같이 느껴진다. 쌓인 낙엽을 밟으며 비에 젖어 선명하게 들어 나는 떨어진 잎의 이런저런 모양과 색채를 따라 가다 보니 계절을 향한 느낌과 세월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넉넉해지고 많이 깊어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 계절이 고마워 진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볼 때는 조바심이 없다. 미지수의 전개 상황에 놀라고 감탄하고 따라가느라 바쁘기만 한 처음 볼 때의 마음은 이미 잘 정리되어 차분하게 머리 속에 놓여있다. 이제는 화면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출연자의 표정을 읽고 오가는 대사를 되새기며 영화 전체의 모습을 그려가며 바라보게 된다. 한 해에 허락 되어진 열 두 개의 달 중에서 열 개 정도 보내고 나면 이제는 금년의 얼굴이 드러나서 마치 다시 보는 영화를 만나는 기분이 된다.

언제나 미지수의 내일이 있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만 그래도 첫 번째 달에 갖던 그 긴장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일년을 큰 그림으로 바라보는 어느 면으로 성숙한 삶의 자세인 것도 같고 다시 만나는 영화에서 진짜 그 영화의 진수를 이끌어 내 감상하듯 제법 괜찮은 태도로 여겨진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결의하는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아직 남은 날 수가 어지간하다는 데에 열 한 번째 달이 주는 위로가 있고 격려가 있다. 한탄하고 후회하면서 주저 앉을 수 없는 남은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힘을 얻는다. 막연하게 무의미한 시간을 길게 이어가는 것보다 얼마나 빛나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역전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 넉넉한 시간이라고 뒤에 한 장 더 남겨 놓은 달력이 어깨를 두드린다. 100세를 바라보는 한국의 노철학자는 평생에 좋은 시절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60대에서70대가 자기는 좋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지금이 또한 좋은 시절이라고 덧붙인다.



철 모르고 좌충우돌 하던 때보다 알만한 것 알고 지혜가 더하여진 시기가 살면서 살만한 세월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잘 익었다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잘 익은 열매라는 말은 참 보기 좋은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산다는 것의 숨 막히게 하는 상황을 열어 젖히고 숨을 쉬게 만드는 여유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익어가는 계절은 아름답다. 그것도 가슴 졸이며 보아야 하는 날 선 아름다움이 아니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만드는 잘 익어가는 아름다움이다.

다람쥐들이 바쁘게 도토리를 모으고 농장에는 추수의 손길이 바쁘고 도시의 생활도 한 해의 결실을 향하여 바쁘다. 어느 날 그 바쁜 손길들이 노동을 끝내고 하늘을 바라본다. 어떤 하늘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때에 마음은 한 가지이다. 도와주고 지키고 인도하여 준 그 손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열 한 번째 달이 귀한 것은 감사함을 담고 있음이다. 많이 거두었으므로 내가 잘났다 교만함도 아니고 적게 거두었으므로 나는 못났다 좌절함도 아니고 허락 되어진 그것으로 지금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사람이 사람일 수 있음이다. 추수 감사라는 축복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는 11월이 그래서 귀중하다.


안성남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