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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알리의 위대한 '저항 정신'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6/12/29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6/12/28 19:49

백 종 인 / LA 스포츠부장

한 해를 정리하는 즈음이다. 스포츠계도 그런 기사가 넘쳐난다. AP통신은 얼마 전 올해의 10대 명장면을 선정했다.

1위는 농구였다. 지난 6월 NBA 챔피언 시리즈 최종 7차전, 1분 51초를 남긴 동점(89-89) 상황이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상대의 골밑슛을 블록으로 막아냈다. 이 수비 하나가 결정적이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절대 강자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무너뜨리고,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AP가 꼽은 2위와 3위도 비슷했다. 대학농구(NCAA)와 리우 올림픽 축구 결승전이었다. 극적으로 우승팀이 결정되는 순간들이 꼽혔다. 나머지 10위까지도 모두 찬란한 장면들이다. 어마어마한 환호와 갈채가 터졌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졌다.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와 그들이 만들어 낸 명승부가 장식한 2016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과는 영 거리가 먼 순간이 있었다. 6월 초였다. 애리조나 피닉스의 어느 병원 집중치료실(중환자실)에 노인 한 명이 누워 있었다. 폐렴이 악화돼 호흡이 곤란한 상태였다. 산소호흡기와 여러 가지 연명 장치에 의지하고 있었다.

곁은 동생이 지켰다. 형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떠니?" 가뜩이나 어눌한데 호흡기까지 막혀 있어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생은 용케 대답했다. "평소랑 똑같아." 비로소 환자는 편안한 표정이 됐다.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군." 눈을 감으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떠버리, 전설의 챔피언, 위대한 헤비급 복서…. 지난 여름 세상을 뜬 무하마드 알리를 형용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단지 쇼맨십이나 스타 플레이어, 최고의 스포츠맨이라는 수식으로 한정하는 것은 그의 74년 생애를 설명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 그는 미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은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만들었다. 고향 마을도 온통 환영 일색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햄버거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겪게 된다. "난 검둥이에게 음식 안 팔아." 주인에게 쫓겨났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로마에서 가졌던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은 그때 사라졌다."

이후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 주니어라는 본명을 버렸다. 더 이상 백인들이 노예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기 싫다는 이유였다. "나는 백인 동네로 이사할 생각도 없고, 백인 여자와 결혼할 생각도 없다. 내가 택한 길이 어떤 건지 알고 있고, 무엇이 진실인지도 안다. 난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3년간 모든 도전자를 물리쳤다. 그러나 진짜 강력한 도전자는 따로 있었다. 베트남전 징집 영장이었다. 물론 그는 거부했다. "내 고향 루이빌에서는 검둥이로 불리며 개 취급을 받는데, 왜 그들은 나에게 갈색 인종들에게 폭탄을 터트리고 총알을 쏘라고 요구하는가?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감옥에 가둔다고? 뭐 어떤가. 우린 이미 지난 400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비난과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무수한 생명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사람은 내게 욕설을 내뱉는다. 내게 무슨 야망이 있었냐고? 지도자가 되려 한 것이라고? 천만에. 난 그냥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가장 폭력적인(?) 스포츠의 스타였다. 그러나 그가 택한 것은 가장 비폭력적인 길이었다.

2016년은 그가 남긴 위대한 저항 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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