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클래식TALK] The show must go on

대학 입학 첫해 교양 영어 수업의 첫 챕터의 제목은 “The show must go on”이었다. 약속된 무대 때문에 부모의 죽음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그 글은 참으로 가혹했다. 4년간 전공 필수과목을 가르치셨던 한 교수님은 독일 유학 시절 예정된 음악회 때문에 부친의 장례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아버지의 임종 대신 관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진다.

지난 3월 이후 세상은 멈춰 선 듯하다. 많은 사람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일상은 급격하게 무너졌고, 관계도 단절되어갔다. 뉴욕을 빠져나가는 인구가 늘어나자 세계의 수도라는 도시는 점점 활기를 잃어 갔다. 그나마 집에서 일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함께 활동하던 젊은 음악가들은 연주가 없어져 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가족들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흘렀고 대중 시설들도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극장과 공연계는 아직 대기 순번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봄, 2021년 신년음악회를 기약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내년 9월 말에 공연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전격으로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표현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메트 오페라는 미국 내 공연 기관 중 최대 규모이다. 그렇기에 이번 결정이 다른 단체들에 미칠 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주 정부 차원에서 공연장들의 제한 조치가 완화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결정들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대형 공장의 생산공정처럼 거대 단체들 역시 공연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충분하고 유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작품의 규모와 상관없이 무대 장치나 조명, 촬영, 의상, 메이크업, 리허설 등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개월째 멈춰있는 단체들이 고용된 모든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난감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체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텅 빈 객석에서 공연을 재개한다는 것은 갈증에 바닷물을 퍼마시는 것과 같다.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마중물은 남겨둬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필자가 이끄는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NYCP)는 지휘자와 솔리스트를 포함해서 약 20명 내외의 음악가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여는 작은 규모의 챔버 오케스트라이다. 규모나 연주 횟수는 메이저 단체들과 비교 대상이 안 되지만, 모두가 머뭇거리는 이 시점에 시즌 오프닝 공연을 지난 주말 과감히 열었다. 물론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열리는 음악회였다. 연주자들이 모여 리허설을 가진 후 음악회를 촬영, 편집하여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온라인에서 오픈했다. 대면 연주를 염두에 둬서 계획했던 기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위기의 짧은 작품들로 대체했고, 길이도 40분 정도로 일반 음악회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8대의 카메라를 사용해 여러 앵글을 구현했고, 입체적인 화면을 위해 전문 촬영 장비들을 사용했다.

공연장의 스태프들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장소를 오픈한 외부 단체라며 NYCP를 환영했다. 거리두기를 위한 공간 때문에 평소보다 적은 수의 연주자들이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무대에 섰다. 객석은 비어있었지만 6개월 만에 음악회를 연다는 사실만으로 긴장감이 다가왔다. 막혀있다고 생각되었던 현실 앞에서 우리는 “The show must go on”을 선택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변하는 상황 가운데 변화는 불가피하다. 어떻게 변화되기를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이 우리를 또 다른 출구로 안내할 것을 기대한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