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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점점 작아지는 엄마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너는 점점 커질 때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니?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 왜 이렇게 늙었어요’라는 소리로 들렸단다. 내가 늙는다는 것이 서럽다기보다 너희들이 잘 자라는 것이 기뻤다.

너희들이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나라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이 엄마는 늘 작았단다.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나는 너무 늙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 없겠지. 살아있다 한들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말해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래전부터 잊혀 사라질 날들을 잡아서 기록하고 있다.

내 아버지, 너희들의 외할아버지는 방과 후 집에 오는 버스 정류장에 나를 마중 나오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 흔드시며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라고 재촉하셨지. 또한 저녁 전 반주 하시며 당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워낙에 건강한 할아버지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내가 부르면 반갑게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작아지고 늙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슬펐다.

“아버지, 나에게 못다 들려준 지난날의 이야기를 적어 놓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가 남긴 노트북을 틈틈이 들여다보며 살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탁했지. 물론 나는 미국 온 후에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두통씩 오랜 세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할아버지가 모았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보내와서 간직하고 있다. 어제 일을 이야기하듯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적혀있는 소중하고 애틋한 기록이다.

너희들은 엄마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걸프렌드나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느라 나의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줄 안다. 그러나 너희들도 언젠가는 나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억들이 소중해진단다. 문자로 써 놓지 않으면 희미해져 사라진다. 못하는 영어지만 그동안 써 놓은 글을 다 번역했다. 너희들이 한국말은 곧잘 하지만 아무래도 읽기와 쓰기는 쉽지 않아서다.

사람은 20살 이전의 기억으로 산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과 사랑에 의지해서 삶을 살았다. 기록은 단지 기록으로만 남지 않고 삶의 연장으로 함께 살아간다. 며칠만 지나면 예전 같지 않게 희미해지는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지는구나. 너희들도 너희 삶을 기록해두기 바란다. 삶의 기록을 남기려면 아무래도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

엄마의 기록이 너희에게 용기를 주고 행복한 삶에 보탬이 되기 바란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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