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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국민 보호 어떻게…네팔서 폭우에 갇힌 한국인 여행객, 코끼리 동원해 구조

터키 쿠데타 땐 총격에도 공항 진입
억류 됐던 110명 안전 귀국 도와
발리 화산재 분출해 수백명 고립
전세기 보내 구하자 대통령도 칭찬
영사들 일당백 정신으로 뛰지만
국민 절반은 영사 서비스에 불만


지난해 8월 13일 오전(한국시각) 네팔의 한국대사관에 비상이 걸렸다. 여행 중이던 한국인 가족 4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접수됐다. 이 가족은 네팔 남부 지역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치트완 지역의 한 호텔에 갇혔다.

"어린이도 있는데 호텔에 점점 물이 차오른다"는 급박한 신고 내용에 대사관 측은 치트완 당국에 신속한 대처를 부탁했다. 이에 당국자는 "현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헬기를 띄우거나 착륙할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이 힘들다"고 난감해했다. 그러면서 "코끼리를 동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알렸다. 상황을 파악한 외교부와 대사관은 "바로 코끼리를 투입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큰비로 사망자만 33명에 이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현지에선 코끼리가 이동수단으로 잘 쓰여서 안전한 구조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가족은 당일 오후 코끼리를 타고 안전하게 호텔에서 빠져나왔다.

이런 일은 해외에서 근무하는 영사에게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게 '주재국에 있는 자국민 보호를 책임진다'는 영사의 핵심 업무다. 재외공관에서 영사 업무를 맡았던 한 외교관은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선배가 말해준 영사 업무의 원칙은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한 가지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자국민 보호' 역할을 제대로 한 외교부를 칭찬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화산재가 분출하자 외교부는 전세기를 띄워 한국 국민을 구조했다. 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지난달 발리 섬에 고립됐던 수백 명의 우리 국민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외교부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와 국민에게 재외공관은 국가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막중한 책임에 비해 영사 업무의 여건은 열악하다. 해외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 수는 약 2200만명(2016년)이다.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1983년)의 50만명에서 44배로 늘었다. 한국민이 관련된 해외의 사건.사고는 1만4493건(2016년)이었다. 하루 평균 약 40건이다.

재외공관에서 영사 업무를 맡는 인원은 현재 188명이다. 이 중 사건.사고만 전담하는 영사는 65명(55개 공관)이다. 2016년 기준으로 영사 1명이 담당하는 해외 출국자 수는 10만3148명이었다. 일본(영사 1인당 3만5659명)의 3배, 호주(영사 1인당 1만1654명)의 9배에 가깝다.

물리적으로 버거운 상황이지만 한국 영사들의 활약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7월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이스탄불 공항에 한국 국민 110명의 발이 묶였을 때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데타 여파로 공항은 폐쇄됐고 외부의 접근 자체가 차단됐다. 경찰과 쿠데타 세력 간 총격전이 이어지는 중에 주이스탄불 총영사관 소속 한국 영사 2명이 봉쇄선을 뚫고 공항에 진입했다. 고립됐던 국민 110명은 영사들과 공항에서 하루 가까이 대기한 뒤 안전하게 귀국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공항에 각국에서 온 1000명 이상이 갇혀 있었다. 영사가 뚫고 들어간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는 '국민 중에 사상자가 나오는 것보다는 공무원이 순직을 무릅쓰는 게 낫지 않느냐'는 농반진반의 말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런 '일당백 정신'이 영사들에겐 필수다.

해외에서 테러나 재난 등 대형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는 영사들이 병원과 시신 안치실을 일일이 돈다. 곧바로 한국민 피해 여부를 확인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1일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영사콜센터와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으로 한국 국민 145명에 대한 소재 파악 요청이 접수됐다. 연락되지 않는 가족이나 지인의 안위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외교 채널을 통한 확인 요청은 소용이 없었다. 미 당국도 경황이 없어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총영사와 직원 등 8명이 직접 현장에 갔다. 이틀에 걸쳐 사상자가 수용된 병원 15곳을 방문해 전수조사했다. 다행히 한국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한 외교관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어느 병원에 동양인 시신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해외에서 숨진 우리 국민의 시신을 보고 사망을 확인한 경험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이어지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이런 영사들의 노력이 환영받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은 영사의 조력을 아예 거부하기도 한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우리 국민을 겨우 찾아냈는데 '나를 찾기 위한 여행으로 혼자 네팔에 왔다. 국가가 왜 방해하느냐'고 화를 냈다. 머쓱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국민은 잘 알지 못하는 영사들의 '노고'는 인터넷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칭찬합시다'코너는 해외여행 중 영사의 조력을 받은 데 대한 감사 글이 대부분이다. 지난달 19일 글을 올린 노모씨는 상하이 여행 중 호객을 하는 중국인을 따라갔다가 거액을 갈취당한 일을 소개했다. 노씨는 "주상하이 총영사관에 피해를 알리자 영사가 중국 공안에게 '한국인 관련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문제를 삼겠다'고 말했다. 한 시간 뒤 빼앗긴 돈을 돌려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갈취를 당했을 때는 '왜 한국인만 타깃이 되나' 하는 마음에 나라를 원망했는데, 일이 처리되는 것을 보며 한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영사 서비스에 대한 국민 만족도는 높지 않다. 외교부가 지난해 8월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외교부의 문제점 중 1위는 '대국민 서비스 정신 부족'이었다. 응답자 2418명 중 1238명(51.2%)이 이같이 답했다. 향후 외교부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분야는 '해외 주재 우리 국민 보호'(42.4%)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외교관들은 영사들의 초동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1월 대만 택시기사가 한국 여성 관광객에게 수면제를 몰래 먹여 성폭행한 사건에서도 공관의 초기 대응이 문제였다. 피해자가 새벽에 대만대표부로 전화해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당직 근무자가 경찰 신고 방법 안내 등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후 외교부는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외교부는 오는 3월까지 '해외안전지킴센터'를 열기로 했다. 현재 운영 중인 영사콜센터와 연계해 심야 시간대나 휴일에 발생하는 주요 사건.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영사콜센터에 사건이 접수되면 외교부 본부 보고를 거쳐 공관 및 경찰 등 관계 부처에 알려져 협의한 뒤 대응하는 구조에서, 일종의 재외국민 보호 상황실을 꾸리는 게 골자다. 신속하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사건.사고를 전문으로 다뤄온 영사 10명이 근무하게 된다. 이재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올해 전문 영사 인력을 39명 늘릴 계획이다. 초동 대응을 더욱 기민하게 하고 가급적 사전 예방이 가능하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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