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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파워 엘리트, 정치의 힘 힘! 힘!! 한데 모아야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아우 샘 조.누이 매릴린 스트릭랜드,
우리 국회의사당 '캐피톨힐(Capitol Hill)'에서 꼭 만나요!"

2018년 중간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 탐 맥아더 의원을 1.1%p 근소한 차이로 물리치고 연방의회에 입성한 미국 유일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앤디 김(38. 민주당 뉴저지주 3선거구).

11.6 중간선거에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총득표율 49.9%, 15만표 가까이 획득해 신승했던 그가 올 11월에 치러질 재선 도전을 앞두고 지난 26일 오후 3시 페더럴웨이 코앰TV에서 시애틀 한인 파워 엘리트들과 조우했다.

킹카운티 선거에서 총득표율 60.79%로 30만표 이상을 얻어 거물급 상대를 물리친 승부사 샘 조 커미셔너와의 조우는 한마디로 한인 뿐만이 아니라 아시안의 자랑이었다.

“샘 조와 같이 한인 커뮤니티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적극 서포트 하겠다”며 그간 솔선수범해 온 의사 제프리 노도 “아프리칸 아메리칸 커뮤니티가 구축한 시스템을 배워 우리도 아시안 아메리칸만의 차별화된 정치력을 발휘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한 자리였다.



시애틀 부시장인 마이클 펑의 연설은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시야와 활동 관점을 넓히고 향후 포커스를 맞추는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사실,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힘들다. 의회에 총 45명의 아시안계 미국인과 퍼시픽 아일랜드 미국인이 있다. 미국에서 아시안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나는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앞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아시안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지금은 서로 힘을 합쳐 더 폭넓은 API 커뮤니티로서 무엇인가를 바꿀 적기라고 생각한다.”

‘앤디 김 후원.모금 행사’를 주도한 쉐리 송이 표현한 대로 “1998년 김창준(공화당) 전 연방하원의원이 퇴임한 이후 20년만에 또다른 한국계 미국인 연방의원인 앤디가 우리 앞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과 “나는 또다른 20년을 기다리지 않길 희망한다. 우리는 한국계 미국인이 정계에 나왔을 때 더 알리고 더 서포트 해야 한다. 미래의 한국계 미국인 국회의원들을 위해서!” 간절히 외치는 갈망은 바라보는 지점이 반드시 한곳이어야 한다.

“버락 오바마가 첫 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 가능한지 알았고, 그것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인 커뮤니티에도 어떤 일이 가능할지 알 수 있었다.
로버트 안, 데이빗 김 같은 한국계 정치인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앤디 김 같은 한인 커뮤니티의 리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앤디 김이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나처럼 정계 진출을 꿈꾸는 청년에게는 아주 큰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 희망은 미래에 누구든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한인들의 움직임은 단지 뉴저지의 것도 아니고, LA, 캘리포니아, 애틀란타의 것이 아닌 지금 전 미주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은 앤디가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국회의원이지만 앞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도와 더 많은 한인들을 그 자리에 앉힐 것이다.”

시애틀항만청 커미셔너 샘 조의 연설은 역동적인데다 사견이지만 가히 연방의원급이다.

“뉴저지는 내 인생의 출발점이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셨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 생계를 책임지며 나와 누이를 키우셨다. 나는 미국의 공교육을 받고 좋은 삶을 살게 됐으며, 이제 미국에서 받은 혜택을 미국에 다시 돌려주려고 한다.
두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의사가 검진 후,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내게 알려줬다. 나는 병원 로비에서 매일매일 낙담한 상태로 안 좋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TV 뉴스에서는 헬스케어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내가 뽑은 뉴저지주 의원이 출연하고 있었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장애가 있는 몸으로 자란다면,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것이다. 그렇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고,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과 비전을 나누고 미션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였고, 함께 형제자매로서 일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계 미국인이라서, 미국 시민권자라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들었던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가 연방의원 후보였을 때 상대 후보는 나를 ‘미국에 속해 있지 않다 (He is not one of us)’며 깎아내렸다. 당시 내 지역구인 뉴저지 선거구는 85%가 백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발로 뛰고 부지런히 일해 당선될 수 있었다. 그 기간동안 많은 캠페인을 했고 투표 전날 3000개의 문을 두드리며 죽도록 4~5일을 뛰어다녔다. 마침내 85%의 백인들은 결국 첫 번째 한국계 미국인 연방하원의원을 선택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 소아마비를 앓던 고아 출신인 내 아버지를 한국에서 데려왔고, 내 아버지는 매사추세츠 공대 그리고 하버드대를 장학생으로 졸업하셨다. 그렇게 우리 가정은 뉴저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나는 미국 정부와 국가에 의해 지금 이곳에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과 한국을 더욱 더 가깝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미국을 위해 싸워야 하고 투표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다.”

앤디 김의 말에 무언가 붙이는 것은 사족일 터. 유일한 한인 연방하원의원, 유일한 아시안계 시애틀항만청 커미셔너,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타코마 전 시장 등과 내내 함께 한 9살 소년 코너 정(Connor Chong)의 눈망울에 비친 한인 파워 엘리트들의 뚜렷한 목소리만 반짝거린다. 그렇게 빛나는 모래알처럼, 우리들 미래인 수많은 차세대의 힘을 모아 당당히 합력하는 미주 한인 커뮤니티를 꿈꾼다.

“샘 아우, 매릴린 누나…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캐피톨힐(Capitol Hill)'에서 꼭 만나요!”환청 같은 앤디 김 목소리가 현실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토마스 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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