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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는 이야기] 미국 트럭커의 사는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 - 트럭과 함께 첫 운행

높은 산을 올라 멀리 바라보면 산 아래 작은 산들과 산맥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첩첩산중이라 우리는 말한다. 산길을 걷다 능선 정상에 올라 바라볼 때 눈앞에 다른 산이 보이면 산 넘어 산이라 말을 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준비작업은 첩첩산중이었기에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해결하면 되었지만 미국에 도착하여 정착을 준비하려니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해결할 일이 많았다. 트럭면허를 취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는데 트럭운전도 숙련직이라고 경험자를 우선으로 모집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라 운전면허에 잉크도 안 마른 나로서는 정말 취업이 어려웠다. 특히나 한국 회사가 별로 없는 시애틀에선 더욱 그러했다.

LA에 알아본 결과 몇 군데 한국 트럭회사가 있어 취업을 약속 받고 무작정 다시 LA로 내려갔다. 승용차로 시애틀 LA를 몇 번 오고 가니 이젠 승용차 몰고 LA 가는 것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LA에 도착하여 한국인 트럭회사를 찾아가니 계약서고 취업이고 절차없이 당장 플로리다로 떠나는 트럭이 있으니 함께 타고 가라 한다. 그저 취업 안 시켜주는 마당에 일을 나가라 하니 황송한 마음에 무작정 트럭에 올라타고 준비 없는 항해를 시작했다. 이민을 준비 없이 와서 그런가 미국에서 내게 닥치는 일은 모든 게 준비 없이 다가오는 일밖에 없다. 트럭에 올라서니 침대가 2층으로 되어있고 냉장고와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작은 식탁이 놓여있었다. 생애 처음 타 보는 큰 트럭. 복잡한 LA 시내를 벗어나니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와 황량한 사막이었다. 처음 옆에 앉아 대륙의 웅장함을 느끼며 서부영화 주인공 클린턴 이스트우드 주니어(Clinton Eastwood, Jr., 1930년5월31일~ )가 말을 타고 이상하게 생긴 바위 사이로 달리던 모습을 연상하며 기분 좋게 가는데 트럭 오너(Owner)가 내게 말한다.

이제 길이 한가하니 운전해 보라고. 떨리는 마음과 긴장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처음으로 트럭다운 트럭의 엑셀레이터를 깊게 밟았다. 웅장한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트럭에 영웅이 된 기분처럼 미국의 고속도로를 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어깨에 너무 힘을 줘 어깨가 무겁고 아프긴 했어도 기분은 최고였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릴 필요 없이 앞으로만 가면 되는 도로이기에 앞서가는 트럭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원래 운전이 체질이라 했든가 운전하는 모습이 안심되는지 오너는 트럭 뒤 침대로 가 잠을 청한다. 아직은 서먹한 마음과 운전 시켜주는 자체가 고마워 난 말없이 운전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백미러에 비추어지는 트레일러는 왜 그리도 긴지 꼭 기차를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트럭들이 고속도로 옆 한쪽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도 빠져나가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망설이다 모두가 빠져나가기에 앞서가는 트럭을 따라 빠져나갔다.

그랬더니 모든 트럭들이 무언가 무게를 재는 것 같은 Scale(저울)에 한 대 한 대씩 올라섰다가 통과를 하는 거였다. 처음 당해보는 일에 긴장하여 어설프게 앞 트럭이 하는 대로 나도 따라했다. 옆눈으로 건물 안을 보니 경찰이 컴퓨터를 보며 무언가 열심히 체크를 하는 것 같았다. 천천히 통과할 무렵 경찰이 트럭을 세운다. 그리고 Bill of Lading(선하증권)을 달라고 한다. 이게 뭐지?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경찰은 트럭을 넓은 곳에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뒤에서 자고 있는 트럭 오너를 깨웠다. 그는 무슨 일이냐며 투덜거리며 나와 함께 건물 안으로 갔다. Bill of Lading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로 인하여 경찰에게 여러가지 추궁을 당한다. 그때 알았다. 그것이 운송장이라는 것을...

뒤에 실려 있는 물건의 무게, 내용, 어디로 가는지 등등 자세한 정보가 적혀 있는 종이였다. 내게 그런 말을 안 해주었으니 모를 수밖에. 그리고 그곳이 트럭 기사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Weigh Station이란 것도 알았다. Weigh Station은 주와 주 경계선에 주를 벗어나기 전이나 새로운 주 들어서고 나서 그리고 길목 중간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트럭의 정비상태, 법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운전을 했는지, 충분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는지, 물건의 무게가 법적규정에 초과되지 않았는지 등등 트럭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감시하는 곳이었다.

트럭드라이버들이 말하는 드라이버들의 무덤이었다. 훗날 내가 돈을 벌어 퍼붓기 바빴던 곳이 되기도 했던, 트럭 드라이버들에겐 그리 반갑지 않은 장소였다. 다행히 트레일러 문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고 티켓은 안 주고 경고를 받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뭐라 변명도 못하고 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주를 지날 때마다 그 Weigh Station이 있어 사람을 매우 긴장시켰다. CA(캘리포니아)를 벗어나니 AZ(애리조나)였다.

키 큰 선인장과 몇 시간을 달려야 트럭 휴게소가 있는 넓고 넓은 땅덩어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NM(뉴멕시코)를 지나 TX(텍사스)에 다다르니 길가에 기름을 그냥 퍼 담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 밭인데 자그만 정유기계들이 즐비하게 서서 쉴 틈 없이 기름을 퍼 올리고 있었다. 집안 마당에도 넓은 들판에도 강가 옆에도 모든 게 기름을 퍼 올리는 기계들이었다. 하루를 달려도 다 못 지나가는 TX(텍사스) 땅에 그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이서 운전을 해 LA(엘에이)에서 FL(플로리다)까지 꼬박 삼일 밤낮을 운전하여 도착했다. 한국에서 환상의 도시로 그려지는 CSI 미국 연속극과는 달리 덥고 후덥지근했다. 완전 한국의 한여름 장마철 더위 같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휴게소에 들어서니 가는 곳마다 악어 조심, 전갈 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곳이 뭐가 좋다고 세계적 휴양도시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눈에 보이는 몇 곳만이 번화하고 도시처럼 보였지 조금 벗어나니 그곳도 별반 없는 시골 농촌마을이었다. 무사히 짐을 내려주고 다음 짐을 기다리며 우린 트럭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악어 조심하라 하니 휴게소 근처를 거닐 수도 없고 미국을 자세히 모르는 상황이라 그저 트럭 주위를 배회하다 아직 낯설기만 한 트럭 주인과 빵 하나로 저녁을 대신하고 잠을 청했다. 2층 침대에서 자려니 자다가 화장실 가는 게 가장 큰 곤욕이었다. 2층이라 더 덥고 모기는 왜 그리도 큰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DMZ에 매복을 들어가면 모기가 군복을 뚫고 들어오는데 플로리다 모기는 손가락만해 한국의 DMZ 모기 못지않았다. 정말 힘든 플로리다에서의 밤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낭만을 찾기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세계적 휴양도시 근처에서 평생 잊지 못할 곤욕의 밤을 보낸 날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 김종박 약력

중앙대 부속 중고 줄
육군 삼사관학교 18기
영주전문대 경찰행정 졸
동양대 사회복지과 졸
사회복지사
현) 코리아 시애틀 익스프레스 오너 및 오퍼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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