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종교칼럼> “평강과 긍휼”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모 교회 박 장로는 자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 동료 장로들, 김 아무개 목사 등에게 세 통의 유서를 남겼다. 고인은 가족들에게 “은행예금 관계 제대로 정리를 안 해서 목사님께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죽음으로 대신합니다.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고 했다. 동료 장로들에게도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똑같은 말을 남겼다. 김아무개 목사에게는 “무기력한 증상으로 변명만 하고 하나도 정리를 못 합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횡령이나 유용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목사님, 사모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누가 되지 않아야 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죽음으로 사죄합니다”고 했다.

영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장로가 자살을 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이다. 그런데 그 자살의 이유를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이 분이 자살한 이유는 한마디로 명예였다. 그래서 자기의 명예가 짓밟히고 자기가 존경하는 김 아무개 목사가 오해를 받는 순간 목숨도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것은 없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자기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명예를...그리고 자기가 존경하는 지도자 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세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자기 자신을 세상에 대하여 못박았다”고 보았다. 자기 자신과 세상과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모든 악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의 동기들을 제공한다.

(1) 율법주의는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여 핍박을 피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다.

(2) 율법주의는 율법을 실제로는 지키지 못하면서도.. 율법을 준수함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기분열적 속임수다.

(3) 율법주의자들은 율법 준수를 통하여 얻은 업적을 자랑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는 의롭고 다른 사람은 불의하다는 사고로 살아간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를 매일같이 십자가에 못박지만 율법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자기의 의와 업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모든 가문의 영광과 학벌과 세상적인 자랑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였다. 또한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넘어 부활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간다는 것은...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즉 성령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이 보장되는가?: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6)

그것은 평강과 긍휼이다.
긍휼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한번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의미한다.
평강은 세상속에서 얻을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화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평화는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이고 (2) 종말론적인 구원의 소망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고 (3) 하나님이 성도의 운명을 책임져주실 것을 신뢰함으로부터 온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재물과 건강과 명예인가? 아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바로 평화와 긍휼이다. 이것이 있으면 세상 속에서 아무리 큰 시련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진정한 행복감은 마음의 평화로부터 온다. 재물의 풍요로움이 심령에 안전함을 줄 수 있지만 그 안전함이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예를들어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질병에 걸려 풍요로운 재물로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겨난다. 배부름이 포만감을 주어 잠시동안 행복을 줄 수 있지만 배부른 다음에는 또 다시 배고픔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는 환경이 좋건 나쁘건 경험할 수 있는 행복감이다. 무엇 때문인가? 성도의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과 은혜에 사로잡힌 자는 평화를 누린다. 그 평화로 세상에서의 부조리와 배고픔과 고통을 극복한다.
저도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가장 중심되는 기도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이다. 사업이 잘 풀리고 문제를 해결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복은 평화요 긍휼이기 때문이다.

이대열 목사 (열방침례교회)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