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뇌우

내가 하는 산행엔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한 걸까. 출발 전 일기예보 같은 건 확인도 안 했다. 준비물은 오직, 동행하는 일행들과 만남이라는 기대감뿐이었다. 그러나 출발하고서야 본능적으로 알았다.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것을. 언제 얼만큼 올 건지는 괘념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이고, 그래 봤자 비 아니겠는가.

여행 중 엄청난 비를 만난 지난 여름 이야기다. 뇌우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도, 아들아이와 여행을 떠났다. 딱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아까워서 대책 없이 운전을 하고 퀘벡을 갔다. 비가 올 것을 걱정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퀘벡 다운타운을 보고 오후 6시쯤, 2시간 반 운전 거리인 몬트리올로 향했다. 그곳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먹을 생각에 공복도 설레었다. 핸드폰 충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고속도로 타는 곳까지만 아들애가 알려주고, 핸드폰을 껐다. 두 시간쯤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 빠질 때쯤, 잠자고 있는 아들을 깨웠다. 핸드폰을 켜고 도착 거리를 확인한 아들은 얼굴이 노래졌다. 도착까지 5시간 남았다는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온 것이다. 원인은 아들아이가 길을 잘못 가르쳐 준 것이고, 나도 오는 동안 이상한 느낌을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화를 아들에게 냈다.

일단 출구로 빠져 주유소에 갔다. 서부 개척시대 같이 하얗고 조그만 주유구가 있는 깜짝 놀랄 시골 주유소였다.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잘 생긴 꼬마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불어가 아닌 유창한 영어로 손님 접대를 하며 개스를 넣어 주었다. 가게에 들어가니 그 동생으로 보이는 다섯 살쯤 보이는 여자애가 캐시대에 앉아서 인사를 했다. 여름 밤인데 이가 부딪칠 정도로 춥다. 이 모든 상황이 아주 놀라웠다. 가게를 인수한 지 3일 되었다는 엄마는 과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 모습을 한 이 가족의 사연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동화 같은 모습이 뒤엉켜 있던 마음에 온기를 주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아들의 어린 시절 은유를 발견한 것이다. 그 잔상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 피해갈 수 있었을 일기예보의 뇌우를 진짜 만났다.

낯선 것을 보고자 떠나는 게 여행이고, 또 낯선 것을 만날까 두려워지는 게 여행이다. 여행은 방수 없이 소낙비를 만날 수도, 지도 없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이 없는 여정은 있을 수 없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아들애가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며 잠깐만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칠흑 같은 어둠이 두려운데, 무슨 일인가 하며 몸을 오싹 거리며 내렸다. "엄마 하늘 좀 봐.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어요?" 소변을 보겠다고 도로변에 차를 세운 아들은 시원함에 감동해서 하늘을 올려본 모양이다. 비올 것 만을 걱정하고 떠난 아들아이와의 해외 여행은 많은 별들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이원경 / 자유기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