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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른 것은 다르게, 하지만 먼저 같은 것을 같게

이혁진 / 소설가
이혁진 / 소설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11/11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1/10 18:29

모든 게 좋았던 3개월 호주살이
살다보니 미묘한 인종차별 느껴
'기생충''조커'가 적시하는 지점

작년 말 호주 시드니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 새 초고에 착수할 장소가 필요했고 마침 그 곳에 친구가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시간 대부분을 채스우드의 집과 공립도서관에서 보냈다.

생활은 단조롭지만 활기찼다. 화창한 봄이었고 거의 매일 아침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침 산책이나 조깅을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도착한 지 사나흘쯤부터는 소박한 단층 주택길을 천천히 걸었고 조금씩 뛰기 시작해 열흘 쯤부터는 아침마다 5킬로미터씩 달렸다. 춥고 미세먼지로 탁한 서울을 떠올리자니 거의 죄책감이 들만큼 풍경과 날씨가 아까웠다.

공립 도서관도 훌륭했다. 조용한 대화나 통화 정도는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분리된 느낌 없이 한쪽에 어우러져 있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른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단정한 교복 차림에 얌전한 머리 모양을 하고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공부하는 쪽은 거의 동양계였다. 반면 대충 맨 교복 넥타이에 재킷이나 셔츠 자락을 흐트러뜨리고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앉아 목소리를 낮추는 기색도 없이 시시덕거리는 쪽은 십중팔구 금발의 백인이었다. 백인 학생 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축은 있었다. 하지만 동양계 학생이 백인인 양 안하무인으로 구는 경우는 없었다.

12월 마지막 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 불꽃놀이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쇼가 끝나고 차량 통제한 대로를 걸어 돌아갈 때 여기저기 떼지어 몰려 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무리는 모두 백인이었다. 나 같은 유색인종들은 혹시나 휘말릴까 모두 조용하고 신속히 행렬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돌아가던 길에 나는 중년 백인 남자와 부딪혔다. 곧바로 미안하다고 말했고 남자는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 친구여, 난 괜찮네. 걱정말고 가시게나. 하지만 괜찮다, 이상의 그 관대하고 여유로운 표현이 고맙게만 들리지 않았다. 그 남자가 백인이고 이곳이 백인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옹졸하고 과민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인상과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중국에서 3년을 살았고 알게 모르게 외국인 차별이라면 겪을 만큼 겪었다.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잘 잊어버리는 성격 때문이 아니다. 중국에서 한국인은 하위 계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중국인보다 월급도 높고 직급도 높았다. 시드니에서 내가 보고 겪은 것은 그보다 기간도 훨씬 짧고 일화들도 일반화하기 어려울 만큼 단편적이다. 안다. 하지만 차이와 계급이 서로 엮일 때 압박과 위력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사고와 감정을 매순간 옭아매는 밧줄이 된다.

두 영화, '기생충'과 '조커'는 바로 그 지점을 적시한다. '기생충'의 기택은 박 사장과 자신을 남편과 가장의 애정과 책임감이라는 선 위에서 나란히 놓고 싶어한다. 사회적으로 명백한 계급 차이를 그렇게 극복하고 싶은 심리라기보다(박 사장에게는 그렇게만 보인다) 동경하고 자신보다 우월한 대상과 연결점을 찾으려는 노력, 인지상정에 더 가깝다. 김연아 선수를 보고 한국인이라는 접점으로 사람들이 위안과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조커'의 아서와 수많은 가면 조커들도 같다. 상위계급을 대표하는 토머스 웨인은 고담시의 하위계층을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계몽과 계도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지하철 살인사건에서도 그 인물들이 먼저 저지른 조롱과 행패와 무관하게 회사동료이자 같은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애도하고 추모한다. 동일한 인간으로서 느낄 당연한 감정에 계급과 사회의 선을 먼저 긋는 것이다. 그 결과 기택은 표면적으로 아무 잘못 없는 박 사장을 살해하고 범죄자·폭도에 불과한 조커들은 고담시를 점거한다.

우리 현실에서도 멀지 않은 모습 같다. 남녀·계급·정파·세대 간 갈등은 날로 깊어지고 날카로워지는 중이다. 갈등을 거듭하면서 감정과 인간성이라는 동질과 보편의 기초를 부정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욱 악화 중이다. 자신의 감정에,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계급의 층, 사회의 선이 먼저 그일 때 위협과 모욕·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것을 다르게' 라는 말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같은 것을 같다고,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같음을 먼저 존중하는 윤리와 가치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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