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눈 내리는 언덕

눈 내리는 언덕

높은 것은 이곳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발 아래 내렸습니다
세상에서 맺은 열매, 이파리들도
다 당신의 것이기에 내 것은 없는 거지요
아까운 것도 믿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두손을 당신께 향하고


푸른 날 하늘같기를 기도하다가
검은 연기로 덮힌 지난 일들로 인해
목놓아 울었습니다
후회와 회한의 순간들이 스쳐갔습니다
소망이 없는 곳에선 이상하리만큼
머리가 텅 비어 공허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살아감은
죽음을 넘어서는 용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믿음이라는 눈으로 바라보면
절망의 불길은 사라집니다
모든걸 집어 삼킬듯한 맹렬한 폭풍우도 잠잠합니다
아직 축복의 시간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힘들 땐 당신을 찾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눈엔
당신의 십자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믿고 발을 내딛지 않으면 사방이 깜깜합니다
여전히 요단강 물길은 사납게 출렁이고
두려움이 겹겹이 몰려옵니다
나의 길을 갈 것인가 당신의 길을 걸을 것인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시간에서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둑어둑 눈 내리는 언덕 위
그림 같은 나무 곁에 하얗게 서 있습니다
점점 나는 눈 내리는 언덕입니다 (시카고 문인회장)

집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립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다시 운전대를 잡지만 온통 머리엔 눈 내리는 언덕만 가득합니다.

Palatine 길을 지나 Quintin 길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습니다. 길 양쪽으로 길지 않은 산책로가 있는데 한쪽은 내리막길이고 사거리 큰길과 연결됩니다. 다른 한쪽에 아담히 펼쳐진 언덕이 있는데 지금 이곳에 왔습니다. 세상은 분주하고 바쁘고 빠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지만, 이곳의 하루는 사뭇 다르게 펼쳐집니다.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매우 느리게 아니 정지된듯한 고요 속에 온천지가 하얗게 물들어갑니다. 마치 소리 없는 리듬이 귓가에 스쳐가듯 언덕 위의 나무들은 춤을 춥니다. 멈춰있는 심장의 박동이 북소리 같이 살아납니다. 노래하듯 하루를 마감하는 언덕의 풍경은 깊이 보고 천천히 흐르는 한 사람의 여행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안에 서있는 한 그루 나무 같습니다.

두팔 벌리고 하얗게 변해가는 나는 이미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펄펄 날리는 눈으로 쌓여가는 언덕입니다.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