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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적들은 어디에 있는가

적이 보이지 않는다. 양상이 다른 세계대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적군을 찾아서 겨냥하는 게 아니라 마주 오는 사람을 멀찍이 비켜야 하고 고개를 돌려야 한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대구에서 코로나가 갑자기 확산할 즈음이었다. 의사를 두 딸로 둔 친구에게 수시로 안부를 물었을 때 6.25전쟁은 난리도 아닌 것 같다며 심각성을 전해왔었다.

그러나 대구에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 악전고투하는 의료진들에게 각지에서 성금을 보내오고, 의료 의병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전남의사회에서는 고생하는 의사 형제들에게 전해달라며 전복을 한 트럭 보내고 병상이 없는 대구 환자들이 광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후 감사 편지 보내 오고, 광주시의사회 회원들이 성금 2000만원과 의료 지원품을 들고 찾아오는 등의 '달빛동맹’(달구벌, 빛 고을)에 대한 기사를 읽고 뜨거운 동료애와 인간애를 느낄 수 있어 흐믓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의 친지들이 미국에 사는 우리들을 걱정해 주고, 친구들도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뒤뜰의 감나무와 아직 덜 자란 무화과 나무의 가지들을 살핀다. 딱딱한 가지 끝에 하루가 다르게 솟아나는 연한 싹과 자라나는 녹색의 이파리들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강아지 밥도 주고, 토끼의 하얀 등도 쓸어준다. 내가 언제 이렇게 했던가. 뒤뜰 쪽은 본체만체하고 아침부터 나가서 종횡무진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이제는 집으로 돌아왔다. 읽다가 만 책들과 먼지가 구석에 있었고, 외인 같이 스치던 가족들도 갑자기 마주하고 앉았다. 지인들과 마주 앉아 웃고 떠들던 날들이 아득해지고, 불편함과 불평을 수시로 쏟아냈던 일상의 날들이 기적처럼 대단했던 날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지난 날로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한다.

어린 날 이른 아침 고향집 마당에서는 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들과 옆집 연로한 오빠는 담밑 둔덕에서 올라오는 호박 줄기를 들여다 보셨고, 기대 놓은 솔가지에 오이 넝쿨을 걷어 올리며 얘기들을 나누셨다. 이제야 그분들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평범해서 시시하기까지 했던 날들이 눈부신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게 되고, 그 맑은 날들이 다시는 볼 수 없는 신화가 될 줄은 몰랐다. 도시로 더 넓은 곳으로 향하던 발길, 무작정 달려온 외길 굽은 길 먼 길, 지금은 엔진을 끄고 정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바쁘게 헤집고 온 길을 돌아본다. 바이러스와의 대전이 암울해질수록 매일같이 나를 불러 세우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문책하고 캐물을 것 같다.


권정순 / 시인·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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