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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우리 영혼의 ‘주차장’

쓰레기 정크장을 연상시켰던 크고 작은 부속품들. 며칠 전 허름한 라티노는 차 부속을 엉성하게 빼내 집 앞 사람이 다니는 길에 벌여 놓고 수리를 했다. 그에게 다가가 고장난 차를 자신의 차고에서 수리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가 쏟아낸 눈빛과 말의 온도는 나와 너무나 달랐다. 공공에게 허용된 땅에서 권리를 가진 자신이 무엇을 하든 누가 상관할 것이냐며 어정쩡한 내게 오히려 반격을 가한다.

문득 기억 저편에 사건이 되살아난다. 그때도 누군가가 집 앞에 차를 주차한 뒤 수리를 하고 있었다. 무심히 바라보는 동안 몇 주가 지났고, 수리가 거의 끝났을 즈음이다. 긴병 끝에 오는 합병증같이 몸에 붙은 장기를 여기저기에 도난당하며 차는 점점 피폐해져 같다. 게다가 실하지 못한 몸에 폭행을 당했는지, 사이드 미러가 깨지고 앞 유리가 파손되는가 하면 범퍼가 떨어지고 트렁크가 내려앉았다.

차가 문제 된 것은 설상가상으로 생긴 화재 때문이다. 몸 전체가 검게 타버리자 그것은 하루아침에 흉한 괴물로 변해 버렸다. 경악할 사실은 문제의 차를 책임질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원을 확인할 번호판은 물론 차체의 부속이 모두 실종되어 연고자조차 찾을 수 없이 세상에서 버려진 차. 그것은 마치 삶에 상처 입고 버려진 홈리스 같았다.



요즘은 계절조차 주차의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가을바람이 출렁이어야 할 계절에 펄펄 끓는 여름이 ‘주차’하며 감당하기 힘든 더위를 몰고 오는가 하면, 지구별 다른 쪽에서는 하늘이 뚫린 듯 걷잡을 수 없는 장맛비를 세상에 뿌리고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균도 인간 세상에 잘못 주차된 것 같다. 녀석의 공격은 세상 영혼들이 격없이 기대고 숨결을 나누는 친밀함에 거리를 두게 하며 따뜻한 인간 띠를 끊게 만들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와해시키고 있다. 삶에 잘못 주차한 바이러스 균은 인간 세상 도처에서 고난과 파괴의 불을 지피고 있음이 분명하다.

헤아려보면 우리 인생도 세상 어느 곳인가에 주차하여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라는 생명체가 세상 한 모퉁이에 정차하여 무엇을 가슴에 담고 어떻게 꽃 피우냐에 따라, 생의 빛깔과 향기는 독특하게 수놓아질 것 같다. 자신의 영혼의 빛깔에 맞는 곳에 주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때때로 주차한 곳 자체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삶의 타이어가 낡고 닳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더 이상 갈 수 없거나, 세상 먼지가 시야를 가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지친 영혼이 머물다 갈 수 있는 혼의 주차장이었으면 좋겠다. 삶의 갈증을 해갈하며 잠시 쉬다 갈 수 있는 영혼의 주차장. 정감 어린 눈길이 머무는 따뜻한 마음일 수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달되는 포근한 가슴일 수도 있겠다. 가슴에 주차된 크고 작은 사념들을 비워내고, 지치고 상처 입은 혼들이 푸근히 머물다 갈 수 있게 넉넉한 여유와 따뜻한 배려심을 마련해 놓아야겠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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