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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이맘때면 생각나는 투수

일본 히로시마 카프는 시민구단이다. 가난한 팀이라는 뜻이다. 에이스를 붙잡을 수 없었다. 부자팀들이 잔뜩 노리고 있다. 도쿄의 요미우리가 연봉 3배를 불렀다. 이제 이별은 기정사실이 됐다.

마지막 등판 날이다. 관중석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그대가 슬플 때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들렸다. 마운드의 투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며칠 뒤였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비장한 표정이 마이크 앞에 섰다. 담담하게 발표문을 읽어내렸다.

“내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이곳에 온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를 키워준 카프를 상대로 힘껏 공을 던진다는 건 솔직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FA(자유계약선수)를 포기하고 남겠다는 뜻이다. 연봉 3배를 마다한 셈이다. 이른바 ‘평생 히로시마’ 선언이다. 딱 하나, 메이저리그 도전만은 허락해달라는 조건이었다.



몇 년 뒤. 미국행이 이뤄졌다. 33살 때였다. 행선지는 LA였다. 다저스는 4년 계약을 제시했다. “설레는 마음 따위는 없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 짓을 4년이나 하라고? 그런 괴로운 일은 짧을수록 좋다. 그래야 내 자신이 더 열심히 할 것이다.” 기간은 3년이 됐다. 당연히 총액도 줄었다.

다저스에서는 성공적이었다. 3년을 채우고, 한 시즌을 더 뛰었다.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도전을 택했다. 우승권 팀으로 가고 싶어했다. 뉴욕행을 택했다. 이 때도 마찬가지다. 양키스는 다년 계약을 줬다. 하지만 당사자가 마다했다. 원한 건 1년짜리 계약서였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매년 계약서를 새로 썼다. 해마다 10승, 200이닝을 넘겼다.

그렇게 4년째를 맞았다. 그 때도 경쟁력은 충분했다. 연봉 1600만 달러짜리 재계약 대상자였다. 본인만 OK 하면 끝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래 걸린 대답은 의외였다. “난 이제 돌아가겠다.”

처음 태평양을 건널 때 약속이 있었다. 히로시마 팬들을 향한 다짐이었다. “반드시 이곳(히로시마)으로 돌아오겠다. 마지막 공은 카프를 위해 던지겠다.” 폼 나는 귀향을 원한 게 아니다. 자신이 정한 엄격한 기준을 따랐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을 때’라는 조건이다. 늙고 지친, 초라한 모습은 싫다는 뜻이다.

양키스의 1600만 달러를 포기했다. 가난한 히로시마는 400만 달러 밖에 줄 수 없었다. 그걸로 2년을 더 뛰었다. 2016년에는 우승도 안겨줬다.

이듬해 봄이다. 은퇴식이 열렸다. 히로시마 시내가 온통 마비됐다. 그곳은 또 한번 눈물 바다로 변했다.

이맘때는 비시즌이다. 야구가 활동을 멈춘다. 대신 선수 영입 작업이 활발하다. 엄청난 거액이 오가는 마켓이다. 류현진의 4년 8000만 달러는 약과다. 3억 달러 이상, 8~10년짜리 거래도 나온다. 누구는 광풍(狂風)이라는 표현도 쓴다. 숨이 턱 막히는 숫자들이다.

이럴 때면 한번씩 그의 이름이 떠오른다. 1년짜리 계약서를 고집하던 투수 구로다 히로키다. 그가 남긴 말이다.

“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야구하는 나이는 아니다. 내가 왜 지금 야구를 하는지 생각한다. 그러면서 늘 완벽하게 태우고 싶다.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지나친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백종인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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