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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아날로그를 소환하는 새해

새해 벽두부터 절친 한 사람이 결심했단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인간적인 감성을 살리는 생활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서핑 대신 종이 책과 신문을, 페이스북·메신저 대신 편지와 음성 전화를, 일정 관리는 수첩으로, 필기는 만년필로…. 팽팽 돌아가는 속도의 검색만이 난무하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탈출이자, 느리지만 깊이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의 복귀다.

하지만 금연이나 다이어트 약속처럼 벌써 몇 년째 새해마다 결심을 되풀이했다 가도 얼마 안 돼 흐지부지되다 보니 이젠 신년의 통과의례처럼 된 터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디지털 문명의 이기들을 떼버리기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 연말 프란치스코 교황이 “식사 시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가족과 다시 소통하라”고 당부해 화제가 됐다. 디지털 사회의 소외와 폐해가 오죽했길래 교황까지 나서 인간적 감성이 담긴 가족 간의 대화를 주문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봐도 마주 보는 대화의 실종이 사회 전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욕과 비하가 표준이 된 정치권에선 댓글만 난무하고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얼굴을 맞대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깊은 폭력과 갈등의 고리를 치유할 수 있을까.



대화와 사색으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감성으로의 귀환은 그동안 기계에 의존해온 생활의 반성이자 인간적인 감각의 회복 선언이다. 불과 전등의 발명으로 인간의 자연적인 생체 리듬은 억제돼 왔고, 마차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근육은 퇴출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만능주의와 초월적인 인공지능의 도래는 ‘기계=이성’이라는 착각 속에 인간 존재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마저 제기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가족이나 친구 전화번호를 몇 개나 기억해낼 수 있는가.” “최근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떨어본 적이 있는가.”

인간 고유의 정신적 관절과 근육의 고통과 퇴화는 이 대답이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우리에게서 인간다움을 빼앗아 갔다. 문명 비평가 니콜라스 카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묘사하며 “인간이 범람하는 디지털 문서의 무형식과 즉각성에 빠져 표현력과 수사학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들었던 ‘깊이 읽기’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인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매리언 울프·‘다시 책으로’)

이제 자동차 타기 대신 마라톤을 뛰는 사람처럼 인간의 한계를 체감하며 자신의 몸으로 능력을 신장시켜 나가려는 노력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 독립 선포나 다름없다.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에 머리를 처박은 좀비가 되지 말고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주변 풍경을 기억해보라. 그 아름다운 풍경을 몇 줄의 글로 직접 옮겨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자전거 애호가 김훈이 ‘바퀴를 미는 길의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고 표현했듯이, 이모티콘이 아닌 바로 몸으로 느끼는 아날로그 감성을 다시 찾아보는 경험이다.

새해부터는 책상 위에 치워 놨던 책을 다시 집어 읽어보자. SNS에 복사해 돌리는 새해 인사 대신 정성 담긴 손 글씨 편지를 보내 보자. 팽팽한 신체의 긴장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나 악기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정보와 지식은 어디서든 검색하고 전송받을 수 있지만 사색과 지혜는 결코 남에게서 전송받을 수 없다. 이것이 진짜 아날로그다.


홍병기 /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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