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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306 대 232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열심히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솔직히 웬만한 스포츠 경기보다 더 흥미로웠다. 미디어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주에서는 한 후보가 밀리는 듯 하다가 역전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주에서는 정반대의 경우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미 오랫동안 파랑이나 빨강색을 지켜왔던 주들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4년 전에 결과를 섣부르게 예측해서 된서리를 맞은 뼈아픈 경험 때문인지, 가장 진보적인 미디어가 가장 보수적으로 예측치를 내놓기도 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미디어에서는 소위 “역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그 역전 현상을 분석하기에 바빴고, 그 역전 현상의 배경에는 음모와 부정이 숨어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역전”이란 말은 처음부터 틀린 말이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하는데 지고 있는 팀이 더욱 분발해서 승부를 뒤집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모든 유권자의 투표가 종료된 순간에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단지 모든 표를 동시에 개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투표함을 먼저 열었는지에 따라서 집계되는 순서가 달랐을 뿐이다.

역전이란 말은 이런 시간차 때문에 생기는 허상이고 개표 방송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방송국의 잔재주에 불과했다. 4년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얻은 정확한 그 숫자만큼 이번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얻었다. 왠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흔히 투표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꽃 대신에 열매라고 부르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떻게 부르든 의미는 같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투표를 아주 싫어한다.

투표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찬성과 반대로 나뉜다는 것인데. 과연 찬성이라고 다같은 찬성인지, 혹은 반대라고 정말 반대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오히려 가끔씩 이 방법이 정말 민주주의적인지 궁금해 한다.

투표란 토론과 설득이 실패하면 가장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소 결정 장애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한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부담이다. 그래서 짬짜면이란 선택지가 생겼을 때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에게는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둘 다 좋아서, 혹은 둘 다 못마땅해서 결정하기 힘들 때, 우리는 여전히 결정을 강요받는다. 그게 민주주의란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해야 최악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고 하면서 또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렇게 어렵게 내린 소중한 결정인데, 정작 그 선택을 받은 사람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런 방법에 대한 개인의 선호를 떠나서, 필자가 반드시 지키는 것은 (아니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투표하지 말았어야 했다. 7000만표 이상을 얻고도 지고 나면 정말 밤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측은지심이 생긴다. 하지만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이기기로 정하고 시작했으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모두가 그런 노력을 할 때 투표는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꽃이 된다.

내가 이기면 공정한 경기였고, 내가 지면 불공정한 경기였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건 틀렸다.

어린 아이와 가위 바위 보를 하면 그런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지고 나면 자기가 이길 때까지 다시 하자고 조른다.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고 하면 삐치거나 화를 낸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나는 항상 옳고 그래서 나는 항상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살배기 아이가 그런다면 가르치기라도 할텐데 70이 넘은 사람이 그런다면 참 대책이 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집안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이 평화롭지 못하고, 나라에 힘 있는 권력자가 그런 사람이면 그 나라가 평온할 수 없다. 이번 대선에 참가했던 후보자들은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인혁 교수 / 웨스턴 캐롤라이나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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