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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민 칼럼] ‘회개하라’ 이 시대에 왜 새롭게 들리는가

기독교신앙에서 ‘회개’라는 말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하신 일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마치고 세상에 나가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으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마가복음 1:15) 마태 역시 마가의 글을 따라 예수님이 공생애에 처음 하신말씀을 알려주고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삶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맨 처음 하는 말과 맨 마지막에 하는 말일 것이다. 맨 처음 말의 중요성은 어떤 사안의 핵심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마지막 말의 중요성은 최후 결론 같은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기는 유언같은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맨 처음 하신 말씀 즉, 회개를 말씀하셨고, 마지막 말씀 역시 “다 이루었다” 하신 것으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의 핵심골자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회개가 기독교 신앙 생활에 얼마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회개’는 말 할 것도 없이 기독교신앙의 첫 단계다. 구원의 장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듯이 거쳐야 하는 첫 단계다. 어느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제일먼저 현관문을 거쳐 들어 가듯이 회개란 구원에 이르는 첫 관문이다. 즉, 회개가 선행되는 경험을 하지 않고 하는 신앙 생활은 예수님이 원하고 바라는 기독교교인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회개에 대한 교훈을 잘 가르치지 않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어느 이단은 회개를 기독교신학의 전용물로만 써서 온 우주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는 무시하는 무지만 들어내고 있어서 회개를 강조하면 혹시 이단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게 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애써 피하기도 한다. 또 어떤 목회자들은 사람만 많이 모이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죄인의 마음을 따끔하게 하는 회개의 설교를 일부러 하지 않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할 내용을 스스로 알아 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회 자체도 회개해야 할 일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물량주의에 빠져 크기자랑이나 하고, 교단의 교리나 강조하고, 그래서 타 교회나 교단들을 경쟁대상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교회가 공교회임에도 이웃 교회의 어려움 이나 약함을 돌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정의와 공정성에 전혀 협조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나누어 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아가, 개인적인 회개도 있을 수 있고, 사회나 국가적으로 회개 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자유니 권리니 하여 도덕이나 인간도리로 마땅히 지켜야할 근본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자유와 권리를 타인에게 피해나 혐오감을 주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자유나 권리는 도덕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유와 권리는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양심이나 도덕의 차원을 넘어 행동하는 것은 방종일 뿐인데 인간들은 방종을 자유의 일부로 알고 당연한 것 처럼 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때 양심세우기 위하여 “내 탓이오” 라는 자성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은 정쟁으로 매우 시끄럽다. 다 잘난 자들이라 스스로 생각하니 누구하나 말하지 않는다. 교회도 말하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는데, “내 탓입니다” 말 할 리 있겠는가. 오히려 교회가 복음보다 이념 논쟁에 휘말려 갈피를 못잡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가 나서서 정치 사회 분쟁들을 추스려야 할 책무 가 있는데, 교회 스스로가 자정해야 할 입장에 있으니 그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회개하지 않는 일에 대한 경고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시편 7: 12에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하나님)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또 신약에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선포했다. 북한의 위협이나 일본의 경제침략같은 것은, 한국 국민과 한국 교회가 잘먹고 잘살아 하나님을 모르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회개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징조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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