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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낙화”에 붙이는 글

구월이 오면 단조롭던 일상은 갑자기 생명이 가진 소리란 소리는 다 틀어놓은 듯이 풀벌레 소리가 고막을 그득 채우고, 세상의 빛이란 빛은 다 쏟아붓는 듯한 눈부심 가운데 찬란해진다. 구월이 그렇듯이, 사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찿아오는 환절기는 유장한 삶의 흐름에서 잠시 비껴 서게 하는 정서적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계절의 순환현상은 놀랍게도 인생의 여러 단계를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기에 완벽한 장치를 갖춘 무대를 선사한다. 풍성하던 잎새들이 하루가 다르게 색조를 달리하고 하나 둘 떨어져 흩어져가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시인 이형기님의 “낙화”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사춘기 때 읽었던 시 한편이 매해 가을이 올 때마다 그리고 삶의 무대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상황마다 다정한 이의 소근거림처럼 떠오르는 것은 정녕 좋은 시가 가진 힘이며 아름다움임을 실증한다. 그러니 심금을 울리는 단 한편의 시만 남길 수 있대도 시인이라는 호명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 낙화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 성숙해지는 내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형기님은 그의 시작노트에서 슬픔이 가득 어려있는 눈의 이미지를 기초로 시를 완성했다고 적고 있다.

“낙화”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기대하고 바라던 것에 대한 체념은 실망과 아픔을 견뎌낸 자의 상급이다. 사람은 실망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마음속으로 매달리고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 마음속에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 곧 스스로를 구속하는 내용이며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속박시킨 자리라면 그게 무엇이든 내려놓지 않고는 자유함도 없을 것이다. 세상적인 바람과 계획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천상의 바람이 스며들 자리가 없다. 살면서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잃는다면 허허로움과 두려움이 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가진 것에 집착한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자의든 타의든 광야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하는 때가 있다. 그때야 말로 그가 가진 내공의 실상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가에 따라,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에 따라, 그대로 부서지며 파괴되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깊어지고 성숙되어가는 영혼이 있다. 영혼의 눈은 내면의 상태를 투영해 낸다.

정든 것을 떠나보내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집안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하듯 오래된 미련과 상처, 두려움과 슬픔, 때론 익숙하게 들어온 내면의 소리도 그것이 부정적인 내용이라면 단호히 떠나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외로움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들에 파묻혀있던 영혼의 눈을 주목해보는 시간으로 삼기를 권한다. 고즈넉이 혼자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 가을은 정녕 홀로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종려나무 교회 목사, Ph.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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