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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잣죽과 대추차

나는 아날로그 세대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좀 따라가고 싶지만, 몸에 배인 감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제자리 걸음이다. 약속에 늦었을 때도 쇼트커트(Short Cut)로 운전해가면 시간이 단축되어 약속시간을 맞출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길, 즉 차량 통행이 적다든가, 길이 예쁘던가, 그런 나름의 이유로 좋아하는 길로만 다닌다. 음식 할 때도 요즘은 별의별 용기들이 개발되어서 시간도 단축하고, 요리 자체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해졌다. 사람들은 그런 걸 선호하고 활용하는데, 나는 아직도 멸치 육수 내어 국물 음식 베이스로 사용하고,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다. 딸들은 그런 나를 스스로 신세를 고달프게 만든다며 안타까워한다.

요즘은 잣죽과 대추차에 꽂혀서 끊임없이 만들어 먹고 마시며, 딸들에게도 나눠주느라 쉴 새 없이 바쁘게 보낸다. 왜냐하면 잣죽은 통상 두 시간 이상, 대추차는 꼬박 이틀 동안 끓이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잣죽은 해보니 쌀 한 컵에 잣 한 컵, 물 5컵 반이 제일 맛있는 양이다. 처음 끓일 땐 귀찮아서 밥과 잣을 갈아 다시 한 번 끓였다.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를 보면 모두가 쌀을 물에 담갔다가 갈아서 한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먹고 쌀을 갈아 잣죽을 끓였더니 밥을 갈아 한 것과 맛의 차원이 달랐다. 차이점을 안 이상 쉬운 방법은 미련 없이 던져버린다. 하긴 밥을 해서 갈아 만드는 죽도 후루룩 끓이는 게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 오래도록 뜸을 들여야 더 깊은 맛이 났던지라, 쌀을 갈아 하면서도 늘 두 시간 이상을 뜸을 들여 주었다. 한 시간 끓였을 때와 두 시간 끓였을 때는 죽의 품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름 동안 몬태나에선 막내가 잣죽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잣을 큰 봉지로 끊임없이 사오는 바람에 계속 끓여야 했다. 둘째는 처음엔 자기는 별로 죽의 팬이 아니라고 하더니 한번 먹어보고 나선 "엄마, 너무 맛있어!"하며 남편 것까지 챙겼다.

대추차는 계피와 생강을 넣는다. 대추 1.25 파운드를 먼저 하루 동안 푹 끓였다. 그 다음에 계피 스틱을 크기에 따라 4~8개 넣고, 생강(아기 손바닥 크기만큼)을 넣어 하루 동안 더 달인다. 끓인다기 보다 달인다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보약 달이듯 정성 들여 온종일 낮은 불에서 끓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틀 동안 달이면서 물이 줄면 처음 물 부운 양만큼 계속 보충해줘서 시작했을 때와 끝났을 때의 물의 양이 같게 끝낸다. 그러면 약간 달큰하면서도 계피와 생강 향이 은은히 풍겨 클래식한 차로 환생한다.



모든 음식은 정성과 시간의 산물이다. 서두르거나 생략이 있을 수 없다. 지름길도 없다. 들인 공만큼 결과가 윤택해진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그런 점에선 음식과 대동소이하다. 모든 이들이 음식을 만들 듯 자기들의 진심과 정성을 담아 메뉴를 개발하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요모저모 지혜를 모은다면 소박해도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음식이 되듯, 모든 이들이 즐거운 삶을 누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담 보다 더 우스꽝스런 조국의 뼈아픈 현실을 보면서 오늘도 우직하게 잣죽을 끓이고, 대추차를 달인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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