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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이번 여름 아이티 고아원 구호팀은 11년 고아원 사역 중에 처음으로 각 고아원 아이들을 초청해서 아이티에서 가장 큰 호수에서 매일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수영하고 노래하고 배부르게 먹고 푸짐한 학용품과 선물도 받았다.

왁자지껄한 잔치를 끝낸 어느 날 오후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킹덤 고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난 5월에 처음 방문했던 킹덤 고아원은 8명의 아이가 원장과 원장 동생 그리고 식사를 돕는 아주머니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조용했고 집 안에는 침대도, 매트리스도, 테이블도 없었다. 허름한 옷가지 몇 개와 깔고 덮는 이부자리용 천들이 방구석에 개켜있고 벽에 아이들 교복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원장이 현황을 이야기하면서 렌트를 못 내서 주인이 재촉한다고 했다. 일년에 2000불이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난 고아원이고 우리가 다른 고아원 수준의 후원을 결정한 것도 아니어서 그냥 잘 들었다고 하고 돌아왔다.

7월에 아이티에 갔을 때, 방학해서 하릴없이 졸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찾아가 봤다. 과자 선물을 들고 만났는데도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원장이 다시 렌트를 못 내서 주인이 나가라고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결정한 바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와서 식량만 보냈다.



8월의 호숫가 잔치를 열던 하루, 아직 우리가 정식으로 후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아원 아이들이 생각나서 선물과 학용품과 식량을 싣고 방문하려고 나선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 킹덤 고아원 원장과 통화를 하던 현지 사역자가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킹덤 아웃." 가슴이 철렁했다. 고아원이 렌트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교회 교우들 가정으로 흩어졌다고 했다. 머리는 망치에 맞은 듯 했고 속으로부터 눈물이 분수처럼 솟았다. 교우 가정이라고 해봐야 평균 이하의 가난한 가정들임이 틀림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눈치를 보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낼지 그동안 다녀봐서 불 보듯 훤했다.

오후에 현지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흐느끼며 통곡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돌보라고 보여주셨다. 하지만 우리 형편이 녹록하지 않았다. 올해에는 후원이 많이 줄어서 당장 새 학기 학교가 걱정이었다. 학교는 예산을 축소해서 운영하기로 했지만, 외부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 등록을 반도 못 해서 새 학년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학교 등록을 못 하고 있다. 그런 형편에 아무리 작은 고아원이지만 새로운 고아원을 선뜻 지원하기가 어려웠다. 렌트를 내주는 것은 이제 그 고아원의 전반적인 것을 후원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에게 킹덤 고아원을 떠밀어 놓으셨다. 나는 알았지만 짐짓 모른 체했다. 그냥 지금 진 짐이나 잘 감당하고 킹덤에는 식량이나 조금씩 나누자고 생각했다. 고아원이 생긴 지 2년 됐다는데 그동안 지내왔으니 어떻게 하겠지 했다. 우리 후원모금도 줄었지만 아이티 현지의, 특별히 고아원의 경제 사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하나님께 계획이 있으실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 계획은 우리가 킹덤의 아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자꾸 고개를 돌렸을까? 미안함과 후회가 목구멍 가득 눈물로 차올라 말만 하려고 해도 목이 메었다. 다음날 새벽 원장을 만나서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새 집을 찾아 2년 계약을 하고 열흘 만에 이사했다. 그동안 겪었을 아이들의 불안과 불편이 송곳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예수님 은혜가 감사하다며 빚 갚는 마음으로 심부름하러 다닌다고 했는데 가끔 내 판단으로 결정하고 있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조항석 /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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